한국일보

푸틴, 우크라이나전 승리에 ‘올인’… 미국은?

2024-03-25 (월)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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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은 최근 러시아 관영 TV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자신은 물론 해외의 청취자와 시청자들이 우리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 하나”를 직접 일러주었다.

“서방세계는 우크라이나전을 러시아에 대한 전술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하지만 우리에게는 국가의 운명이 걸린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는 게 푸틴의 설명이다. 필자가 보기에 서구의 전략적 실수는 이같은 현실을 무시한데서 비롯됐다.

새로 나온 각종 자료가 확인해주듯 러시아 경제는 대다수 전문가들이 전망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서방의 제재를 견뎌냈다.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는 지난해 3% 성장했고, 2022년 초 18%까지 치솟았던 인플레이션은 7.5% 선에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 국영은행이자 국내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는 모기지 붐에 힘입어 지난 한 해 동안 수익이 5배가 늘어나면서 역대 최고수준에 도달했다.


모스크바가 서방제재를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 번째 이유는 상호의존적인 글로벌 경제체제 아래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이 러시아에 대한 포괄적인 제재를 취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서구의 높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전면적 금수조치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포괄적이고도 완전한 에너지 금수조치를 단행할 경우 유가 급등으로 대규모 경기침체가 불가피하다는 현실적인 우려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러시아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의 집단 철수도 신통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 이들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비 서방업체들이 곧바로 채웠기 때문이다. 스타벅스가 비운 매장마다 현지 브랜드인 ‘스타스 커피’가 입주해 러시아 고객들의 카페인 욕구를 충족시켰다. 필자가 만난 인도 대기업 중역들은 서방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철수하며 급매물로 내놓은 자산을 헐값에 거둬들여 짭짤한 영업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우리가 새겨야할 교훈이 있다. 세계 경제의 긴밀한 상호의존성으로 인해 러시아산 원유를 금지하게 되면 지구촌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된다. 또한 비 서방 경제국들의 비중이 커졌기 때문에 이들이 동참하지 않는 ‘반쪽 제재’는 성과를 내기 힘들다.

그러나 가장 큰 교훈은 경제 압박만으로는 제재 대상국의 항복을 받아내기 힘들다는 점이다. 지난 수십 년간, 워싱턴은 쿠바,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에 혹독한 경제 제재를 가했다. 하지만 이번에 제재를 받은 러시아를 포함해 문제가 된 정책을 번복한 정권이 단 한 곳이라고 있었던가?

러시아 경제가 제재를 이겨낸 가장 큰 이유는 푸틴이 실행가능한 모든 대응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를 전시체제로 전환했고, 애국적인 수사를 동원해 고립감에 빠진 러시아인들을 하나로 결집시켰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치적 독립성을 인정받는 레바다 센터의 최근 서베이에 따르면 푸틴의 지지도는 86%로 껑충 뛰었다.) 중앙은행이 가파른 금리인상을 단행하고, 재무부가 신속히 외국환 관리에 나선데 이어 정부가 지출을 극적으로 늘리면서 이른바 러시아의 국방공업경제(miltary-industrial economy) 시스템이 탄생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러시아 경제와 사회 전반에 심각하고도 장기적인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 정책이다. 그러나 움직임이 더딘 만성 스태그네이션은 즉각적이고 날카로운 급성 경기침체보다 충격이 덜하다.

푸틴은 자신이 서방세계를 상대로 러시아의 국운이 걸린 이판사판의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종종 전술핵무기 사용을 입에 올리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푸틴은 서방 핵심국가들,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을 겨냥한 방대한 정보전을 직접 지시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 추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전 개전 첫해, 크렘린과 연계된 계정에 의해 작성된 숱한 포스트의 합산 조회수는 최소한 160억회에 달했다. 미국이 틱톡의 전면 금지를 고려 중인 상황에서 정말 문제 삼아야 할 이슈는 플랫폼의 실소유주가 누구냐가 아니라 적대적인 세력이 진실과 사실을 왜곡하는 메시지를 내보내고 퍼뜨리기 위해 해당 플랫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이다.

이번 전쟁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여러모로 ‘큰 일’을 해냈다. 서방국들 뿐 아니라 일본, 한국과 싱가포르와 같은 비서방국들까지 우크라이나 지원대열에 합류시켰다. 키이우에 방대한 인도적, 물질적 지원도 아낌없이 제공했다. 반면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하는 미국의 공화당 의원들은 대단히 무책임하고 불안한 정책에 매달린다. 그들의 정책이 채택된다면 미국은 국제무대에서 힘을 잃을 것이고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위험해질 것이다.


바이든을 비롯한 서방세계 지도자들은 푸틴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전의 승리를 위해 ‘올인’할 것이라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시간은 더 이상 푸틴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동결된 러시아 중앙은행의 지급준비금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키이우가 필요로 하는 모든 종류의 무기를 신속히 제공해야 한다. 푸틴이 느껴야할 압박감은 장기적인 경제적 하강이 아니라 단기적인 군사작전 차질, 점령지 상실, 사상자수 증가와 러시아군의 사기 저하다.

서방측 전략의 핵심 목표는 푸틴이 이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지적은 전적으로 옳다. 설사 그것이 서방측 개입 확대와 심지어 지상군 투입을 의미하더라도 러시아의 침공이 성공하는 것을 맥없이 지켜보는 것보다 낫다. 마크롱은 이번 주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전은 프랑스와 유럽의 실존에 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서방국들은 그들이 실존적 위기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로 뭉쳐 러시아의 위협에 단호히 대응해야만 우크라이나전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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