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이든, 이스라엘 국민에게 ‘불편한 진실’ 알려야

2024-03-11 (월)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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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끔찍한 테러공격을 가하자 바이든은 개인적 신념과 냉철한 계산을 바탕으로 즉각 행동에 나섰다. 먼저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의사를 밝혔다. 바이든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스라엘의 군사적 대응을 유도하기에 앞서 일단 이스라엘을 감싸 안고 다독이며 필요한 무기를 제공해 신뢰를 얻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중하게 내린 그의 전략적 판단은 완전히 빗나갔다.

처음부터 바이든 행정부는 하마스에 대한 ‘대칭적 무력대응’을 이스라엘에 강력히 주문했다. 워싱턴의 분명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자체적으로 추산한 3만 명의 하마스 무장대원들을 소탕하기 위해 220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거주하는 가자지구에 21세기 개막이래 최대 규모의 폭탄세례를 퍼부었다. 지난 1월에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가자지구 전역의 건물 가운데 절반 이상이 손상되거나 완전히 파괴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불가피한 지상전 대신 하마스 무장 세력과 군사시설 제거에 초점을 맞춘 제한적인 ‘표적 공격’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침공계획을 극구 만류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미국 관리들과 수차례 마라톤 회의를 가진 후 원래 계획대로 가자지구 침공을 강행했다.


바이든이 현지에 파견한 외교팀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스라엘 측에 인도적 차원의 전투행위 중지를 촉구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미국 정부가 카타르를 통해 하마스와 인질교환 협상을 성사시킨 이후에야 마지못해 인질교환을 위한 단기 휴전에 합의했다.

개전 초기, 가자지구 남부에서 전개된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자 미국 관리들은 가자 북부지역에서 이와 유사한 피해가 나오지 않도록 이스라엘의 자제를 당부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가자 북부지역 주민과 그곳으로 옮겨간 피난민들에게 잿더미가 되어버린 남부로 대피하라고 지시한 후 바이든 대통령의 입에서 ‘무분별한’ 대응이라는 탄식이 흘러나올 정도로 무지막지한 공습을 가했다.

미국은 무고한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보호하라며 이스라엘 정부를 수시로 압박했으나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지금 워싱턴은 이집트 접경도시인 라파 침공을 막느라 이스라엘 정부를 상대로 힘겨운 설득작업을 벌이는 중이다. 라파에는 10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주민과 피난민이 밀집해있다. 반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또 다른 인질협상의 성사 여부에 관계없이 라파를 침공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워싱턴은 종전 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땅을 접수하거나 그곳에 새로운 유대인 정착촌을 세우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둘 모두 실행할 계획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독단적인 행동을 거듭하면서 미국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엄청난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에 전전긍긍하면서도 이스라엘에 점점 더 많은 무기를 지원하는 미국의 부조리한 정책은 도덕성 시비까지 불러왔다.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언급하며 “무분별하다”거나 “선을 넘었다”고 웅얼대는 미합중국 대통령의 모습은 나약함과 수동성의 상징처럼 보인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부분적으로는 이스라엘 정부를 믿은 게 문제였다. 바이든이 신뢰하는 네타냐후는 예외적일만큼 영리한 정치인이다. 지난 수십 년간 그는 미국의 대통령을 다루는데 남다른 수완을 보였다. 바이든 역시 예외가 아니다. 비비(베냐민 네타냐후의 애칭)는 바이든의 신뢰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사용했다. 바이든의 속내를 꿰뚫어 본 네타냐후는 그보다 한 수 앞서 나갔다.

그러나 비비가 문제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이스라엘은 지금 집단 트라우마를 앓고 있다. 10/7 테러공격은 이스라엘을 뿌리째 흔들어놓았다. 1,200여 명의 유대인 사망자를 낸 테러 공격은 이스라엘인들이 오랫동안 공유해 온 ‘안전의식’을 산산조각 냈다. 그 결과, 이스라엘 국민은 뒤늦은 후회를 불러올 네타냐후 정부의 하마스 대응책에 동조했다. 바이든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친구 입장에서 유대인 벗들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스라엘 국민은 바이든을 신뢰한다. 외교정책 전문가인 리처드 하스의 건의대로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셋에서 친구들을 향해 직접 연설을 하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된 이후 가자지구에서 목숨을 잃은 3만여 명 가운데 상당수가 어린이다. 현지 관측통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 4명 당 한명이 기아선상에 놓여있고, 거의 모든 주민들이 식량지원에 의존해 모진 목숨을 이어간다. 지난해 12월말 기준으로 가자의 식수보급률은 전쟁 이전의 7% 수준이다. 대부분의 병원은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옥스퍼드 출신의 외과전문의 닉 메이너드는 부분적으로 가동 중인 가자지구의 몇 안 되는 병원 중 한 곳의 참혹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새로 들어오는 환자의 상당수는 끔찍한 부상을 입은 어린이들이다. 심하게 다친 아이들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병원에는 그들에게 줄 진통제가 없다. 모르핀은 떨어진지 이미 오래다. 아이들은 말 그대로 병원 응급실 구석의 마루 바닥에 누운 채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를 완전히 소탕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하마스 무장대원을 모조리 죽이고, 군사시설을 뿌리째 뽑아버리는 것은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하마스를 파괴하기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하마스는 무장집단이 아니라 “오직 무장투쟁을 통해서만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디어를 깨뜨리려면 비폭력적 행동과 협력이 팔레스타인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그들과 이스라엘 국민 모두의 지속적인 안전을 보장해준다는 보다 나은 아이디어가 나와야 한다.

바이든은 이스라엘을 방문해 불편한 진실을 직접 밝힘으로써 그들을 향한 자신의 진심어린 애정을 확증해야 한다. 이를 통해 바이든은 에너지와 도덕적 명료성 및 지혜를 두루 갖춘 신뢰할만한 ‘글로벌 리더’로 국내외의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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