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주말이면 제 아빠와 함께 놀러 온 손녀가 탁자위에 아이패드를 올려 놓고 열심히 게임을 즐기면서 힐끔힐끔 나를 쳐다본다. “할머니 뭐 하세요? 왜 뜨거운 물 수건을 눈 위에 올려 놓아요?” 무척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 이건 눈이 너무 피곤해서 찜질해 주는 거야.” 무슨 뜻인지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하고서는 이내 게임기로 눈을 돌린다.
왁자지껄 집으로 아들 식구가 찾아오면 기다렸다는 듯 곧 바로 밥을 짓고, 냉장고 문을 수 십 번씩 여닫는 손길이 번거럽기도 하지만 이쯤이야 하는 즐거움으로 매번 뒤에 오는 피곤을 잊는다.
오래 전 제 엄마와 함께 김치를 담그느라고 큰 양푼이에 배추를 절이고 물기를 뺀 다음 노란 배추에 양념 속을 넣는 과정을 곁에서 치켜보던 어린 손녀가 “할머니, 나도 해 보고 싶어요”라고 하며 고사리 손을 양푼이에 넣고 쪼물락 쪼물락 배추 속을 헤집던 손녀가 어느새 훌쩍 자라 있다.
어저께 같은 세월을 넘어 할머니와 함께하던 소꿉놀이는 저만치 뒤로하고 나 홀로 게임에 빠져 있는 손녀.
옛부터 회자되는 말 가운데, 자식들이 찾아오면 반갑다가도 돌아가면 더 반갑다는 말이 이제야 실감나는 노년에 이르렀다. 모임에서 만나는 지인들마다 건강 문제를 시작으로 귀가 잘 안 들린다, 눈이 침침해서 글이 잘 안 보인다는 둥, 무릎이 아픈 건 오래 전부터 노래처럼 들어왔던 말인데, 아니나 다를까, 이제는 나 역시 슬금슬금 손가락 마디가 삐걱거리고, 발 뒤꿈치도 저리고, 멀쩡하던 눈도 바람이 들어오면 아리고 눈물이 난다.
이렇듯 하루 하루가 새로운 설레임 보다는 지난 세월의 아릿함이 묻어나는 노년의 공허함이야 어쩌랴마는 다행스럽게도 내 곁에는 나 못지않게 노래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카톡으로 좋은 노래와 영상을 서로 주고받는 것이 이제는 크나큰 낙이 되고 있다. 우리 인생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없다면 오아시스 없는 사막처럼 얼마나 일상생활이 삭막할까?
요즈음 한국에는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최근 TV프로 복면가왕의 노래 대항전에서 “희로애락도 락이다”라는 무대를 압도하는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저절로 몰아지경에 이르는데, 방안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노래가 끝나고 나서야 일어나는 나를 향해 남편이, “아프다는 눈은 어쩔려고..” 한 마디 건넨다. 나만의 음악취향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과는 달리, 여러 장르의 노래를 섭렵(?)하다시피 하며 즐길 줄 아는 나의 예능 끼는 어쩌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귀한 선물이 아닐런지.
아들 식구들을 보내고 설거지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튀어나오는 최희준의 ‘하숙생’을 흥얼거리며, “맞아, 이 노래가 우리 나이에는 제격이지.”하며 설거지하던 손을 멈추고 지긋이 노래에 젖어 본다. 비록 평범한 일상일지라도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감성의 자양분인 음악이 항상 내 곁에 있어 참 좋다.
늦은 시간 오늘도 쟝. 프랑소아 모리스의 샹송, “모나꼬(Monaco)”를 들으면서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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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순 메리옷쯔빌,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