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장가능성 vs 겸손함

2024-03-16 (토) 최진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박사과정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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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학종합대학원은 스위스와 영국의 대학과 해외복수학위를 운영하며 매년 파트타임 박사과정을 선발하고 있다. 하루는 학생 선발의 과정에서 스위스 교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올해 신입생 중 한 학생의 영어실력이 부족한 거 같아 아무래도 확인이 필요하다며 직접 인터뷰가 가능하냐는 문의였다. 스위스 교수는 학생의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읽고 본인 생각에 문제가 되는 문구를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 I haven‘t used English much in recent years, but do my best to be fluent as soon as possible(영어를 몇 년간 사용하지 않았지만 금세 능숙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스위스 교수가 언급한 학생이 명석하게 자기소개를 하여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 학생은 영어 인터뷰 당시 본인의 의사를 명확히 전달할 뿐 아니라 토마스 아퀴나스를 언급하며 학문적 철학도 거침없이 전달하여 무척 인상 깊었다. 입학 면접시 질문 이상의 풍성한 철학과 학문적 비전을 영어로 답하는 학생은 많지 않기 때문에 좋은 학생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해외 대학 주임교수로부터 영어면접 재요청에 내심 놀라서 학생의 지원서를 다시 읽어보았다.


거론된 학생은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사업과 학위과정을 이수하였고 영어소통에 능숙했으나 자기소개서에는 동양의 미덕인 겸손으로 자신을 낮추어 표현하였다. 하지만 스위스 교수는 약점을 스스로 고백했다고 생각하며 재검증을 요구했던 것이다.

스위스 교수에게 곧바로 “Asian humbles(아시아의 겸손함)”를 언급하며 학생 소통의결을 재해석해주었다. 인터뷰 결과 학생은 영어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고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소통할 줄 안다고 회신하였다. 스위스 교수의 질문은 동양의 미덕인 겸손을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소통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할 계기가 되었다.

전통적인 서양문화에서, 특별히 기업과 학계에서는 자기를 소개할 때 자신의 약점을 스스로 언급하지 않는다. 소위 ‘개선점’ 혹은 ‘약점’을 말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성장가능성을 내포한 관점으로 돌려서 표현한다. 예를 들어 약점을 지칭하는 단어인 “Improvement opportunities(성장가능성/개선가능성)”은 방향성을 갖고 있는 약점이다. 모든 약점은 앞으로 개선되고 나아질 방향이라는 의미로 지칭하기에 Improvement opportunities는 성장지향적 사고방식이 내재된 표현이다.

이와 유사하게 면접 당시 약점을 질문 받는다면 피면접자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강조하며 전문성으로 인해 생길 수밖에 없는 공백을 언급하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강점을 강조하도록 훈련받는다. 마치 변화구와 같이, 자신의 약점을 겸손하게 인정한 것 같이 말하지만 동시에 강점을 중심으로 소통하는 법을 학습한다. 강점과 약점은 종이 한 장 차이이기 때문에 경쟁사회에서 자신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성장지향적인 표현으로 소통하도록 철저히 배운다.

동아시아 유교사상에서 온 겸손은 자신을 낮춤으로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이자 아름다운 마음가짐이다. 겸손함으로 인해 더 성장할 가능성을 내포한 태도이지만 동시에 경쟁적 현대사회에서는 때와 상황에 맞게 절제해서 사용해야하는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국제화되어 서양 사업가와 학자와 논의하는 자리에서는 내 말의 뉘앙스를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고려하여 톤과 뉘앙스를 조절해야한다.

<최진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박사과정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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