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스카상은 백인들만의 잔치였다. 오스카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지난 2015년과 2016년에 2년 연속으로 오스카상의 주·조연상 후보 20명을 전부 백인들로만 채우자 흑인 감독들과 배우들이 백인 일색 오스카를 보이콧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서기도 했다.
이런 차별의 중심에는 7,000여명으로 구성된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있었다. 나이가 많은 백인 남성 위주인 아카데미는 인식이 관객 구성 등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아카데미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고 인식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NFL이 시행하고 있는 ‘루니 룰’(Rooney Rule)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루니 룰’은 아카데미처럼 ‘인종차별’ 비판을 받아온 NFL이 2003년 감독 채용 인터뷰를 할 때 흑인을 비롯한 소수계를 최소한 1명 포함시키도록 의무화한 규정을 말한다. 당시 NFL의 ‘다양성 위원회’를 이끈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구단주 댄 루니의 이름을 딴 규정이다.
아카데미가 실제로 ‘루니 룰’까지 도입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여론의 강력한 압박 덕분인지 오스카상은 이후 상당한 다양성을 보여주는 등 사뭇 다른 방향으로 변화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2020년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받고 윤여정이 2021년 여우조연상, 그리고 2023년에는 역시 아시아계인 미셸 여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루니 룰’이 도입된 이후 NFL의 변화는 가히 획기적이라 할 만 하다. NFL 초창기인 1920년부터 2003년까지 80여 년 동안 소수계 감독은 총 7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루니 룰’이 도입된 이후 이 숫자는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NFL은 기존의 ‘루니 룰’을 더욱 확대해 현재는 의무적으로 인터뷰해야 하는 소수계 감독 후보를 2명으로 늘렸다. 이런 노력 덕분에 2024년 시즌을 앞둔 현재 NFL 32개 팀 가운데 소수계 감독 숫자는 무려 9명(흑인 6명)에 달한다.
‘루니 룰’이 미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스포츠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규정이 실시된 이후 미국의 많은 대기업들도 고위직 채용 시 ‘다양성 확보’를 이유로 소수계를 일정 부분 의무적으로 포함시키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루니 룰’이 미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광범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루니 룰’이 현재 법률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고문을 지낸 스티븐 밀러가 세운 보수 비영리 단체 ‘아메리카 퍼스트 리걸’(America First Legal)이 NFL을 상대로 ‘루니 룰’이 법률을 위반하고 있다며 연방민권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 단체는 “만약 NFL이 정말 채용과정에서의 차별을 없애고 싶다면 ‘루니 룰’을 폐기하고 필드 위에서 드러나는 능력주의 시스템을 따라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많은 법률전문가들은 ‘아메리카 퍼스트 리걸’의 소송이 단지 NFL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기업들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연방대법원은 대학입학 사정에서 소수계를 우대하는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 리걸’의 움직임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많은 대기업들의 채용 정책에도 제동을 걸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들의 다양성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법률적 리스크와 관련해 자문을 해주고 있는 켄지 요시노 뉴욕대 법학과 교수는 “루니 룰의 현재 리스크는 ‘옐로’ 상태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 안전한 것으로 볼 수 없는 상태라는 평가이다. 공부는 잘하지만 대기업 채용과 승진 등에서는 여전히 차별에 직면해 있는 아시아계로는 ‘어퍼머티브 액션’ 폐지와는 다른 의미에서 관심을 갖고 ‘루니 룰’의 향배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