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전통적으로 화요일에 투표를 한다. 연방의회는 19세기 중반 11월의 첫째 월요일 다음날인 화요일을 대통령 선거일로 정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날 유권자들은 대통령을 비롯해 연방 상하원의원 등 주요 선출직 공직자들을 뽑는다.
11월, 그것도 화요일이 선거일인 것은 18세기 후반부터의 전통이었다. 당시 국민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했던 만큼 농번기를 피하면서 너무 춥지 않은 달로 잡은 것이 11월이었다. 혹한이 닥치면 마차를 타고 투표장소까지 가기가 불편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주 7일 중 화요일이 선택된 것은 당시 교회가 삶의 중심이었기 때문. 일요일 예배 후 투표소가 있는 도시까지 여행할 시간을 고려하니 화요일이 적당했다. 아울러 수요일은 농부들이 수확물을 시장에 내다 파는 날이니 화요일이 여러모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해서 12월에 대통령 당선자가 확정되고, 새해 1월에 새 행정부가 출범하는 전통은 이어져왔다.
11월 선거일이 미국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화요일이라면 그 다음 중요한 화요일은 ‘수퍼 화요일’이다. 이날은 공화 민주 양당이 대통령선거 후보를 정하기 위해 진행하는 예비선거가 여러 주에서 동시에 치러지는 날. 올해 수퍼 화요일인 5일에는 캘리포니아 등 16개 주에서 예비선거가 실시된다. 각 당 대선후보로 지명받기 위해 필요한 전체 대의원의 1/3이 이날 선거에 걸려있으니 ‘수퍼 화요일’은 양당 대선후보가 정해지는 날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이날 승자가 거의 그해 대선후보가 되면서 본선의 가닥이 잡힌다.
‘수퍼 화요일’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6년이었다. 그해 5월25일 6개 주에서 예비선거가 실시되자 미디어들은 ‘수퍼 화요일’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수퍼 화요일’에 공을 들이며 선거 전략을 짠 첫 케이스는 1980년.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 선거참모들은 3월11일 앨라배마, 플로리다, 조지아 등 남부 3개주에서 동시에 예비선거가 실시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카터는 인기 바닥인 현직 대통령으로서 재선에 도전하고 있었다. 선거참모들은 3월4일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카터가 패배할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한주 후인 남부 3개주 예비선거를 ‘수퍼 화요일’로 홍보하며 카터 바람을 불러일으킨다는 전략을 세웠다. 조지아에서 태어나고 주지사를 역임한 카터에게 남부 유권자들은 호의적이라는 사실에 기대를 걸었다.
결과적으로 카터는 뉴햄프셔에서도 이기고 ‘수퍼 화요일’ 예비선거에서도 승리했다. 하지만 본선에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패배하고 초라하게 낙향했다. 그 후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모두가 아는 바이다. 그러니 대선 승리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 대선이 목표라면 경선 후보들은 ‘수퍼 화요일’이라는 문턱을 넘어야하는 것이 기본이다. ‘수퍼 화요일’이 관심의 초점이 된 1988년 이래, 공화당 경선 후보 중 이날 승리 없이 대선 후보로 지명된 경우는 없었다. 현직 대통령이 출마한 대선을 제외하면, 1988년 조지 H.W. 부시, 1996년 밥 도울, 2000년 조지 W. 부시, 2008년 존 매케인, 2012년 미트 롬니,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수퍼 화요일을 휩쓸며 공화당 대선후보가 되었다.
민주당의 경우 2020 대선 경선에서 초반 승세를 잡았던 후보는 버니 샌더스였다. 하지만 3월 3일 수퍼 화요일에 조 바이든이 대승을 거두면서 전세가 바뀌고 샌더스는 사퇴했다.
이번 수퍼 화요일은 짜릿한 긴장감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정답을 아는 시험지를 보는 느낌이다. 심드렁한 분위기 속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바이든, 트럼프 둘 다 싫다’는 집단. 마케트 법대의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전국 유권자들 중 17%가 이 그룹에 속한다. 이들이 투표를 아예 안할지, 그래도 좀 덜 싫은 후보에게 표를 줄지, 제 3의 인물에게 투표할지…. 올 대선은 이들의 투표 향방에 꽤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