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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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즐거움

2024-03-04 (월) 이재순 인디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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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몇년이 지났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즐겁다. 직장으로 출근해야 할 걱정이 없으니 하루가 휴일처럼 느껴진다. 직장생활의 팽팽한 긴장에서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기다려지던 휴일은 얼마나 달콤했던가! 그 휴일의 연속이 노년의 삶이라고 생각하면 콧노래가 절로 난다. 삶을 얽히게 하는 수많은 걱정에서 해방되는 자유로움이 찾아온다.

그 자유는 우선 경제적 부담에서 오는 가벼움이다. 젊은 시절 개미처럼 일해서 아끼고 모아놓은 연금 같은 노후 대책으로 돈 걱정에서 벗어났다. 한마디로 이젠 경제생활을 하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먹고 살 수가 있다니 이런 축복을 어디에 비교할까! 그렇다고 그냥 노는 것은 아니다. 취미를 가지고 하고 싶은 일만 해도 된다는 선택이 있다는 것이다.

어느날 보니 자녀 양육이라는 책임에서도 벗어났다. 결혼해서 별 계획없이 아이를 낳는다. 자식을 기르는 책임은 수십년간 어깨를 짓누른다. 그야말로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가르쳐야 하는 나날의 일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면 애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자립할 때까지 계속된다. 자식을 사랑하는 즐거움이 있다고 해서 부모로서의 수고나 책임감이 덜 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어깨가 가벼워짐을 느낀다.


나이 먹고 얻은 것은 또 있다. 남의 눈에서 좀 자유스러워졌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조심스러움 때문에 나의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 오랜 시절 경험에서 익힌 뚝심이라고 할까? 늙은이의 고집이라고 할까? 주체성의 확립이라고 할까?

어쨌거나 내 외면이나 내면의 장신구를 벗어버리는 용기가 생겼다고 해도 좋겠다. 구태여 치장을 하여 본 모습을 돋보이게 하는 노력을 좀 덜 하게 됐다. 척 하는 허위 모습을 키울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아는 척, 잘난 척, 가진 척 하는 내면의 치장을 좀 덜 하게 됐다.

그렇다고 갑자기 새 사람으로 변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저 생긴 모습대로 속살을 조금 두텁게 다져갔다는 얘기가 되겠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 부드러워 졌다. 정의감에 불타서 옳고 그른 흑백의 세상이 아니라 여러 개의 색깔도 존재하고 또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도 생겼다. 모지게 싫은 사람도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하면 조금은 용납이 된다. 싫은 것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공존할 여백을 남겨두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남의 일을 일일이 집고 넘어가지 말고 눈감아주는 여유가 좀 생겼다고 할까. 불의에 굴복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은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으니 내 것이 늘 옳다는 생각은 나를 괴롭힐 뿐 세상을 바꾸는 힘은 되지 못한다는 것도 실수를 통해서 학습된 생각이다. 그래서 공자님도 60쯤 되면 귀가 순해져서 웬만한 말도 거리낌 없이 쉽게 소화하는 나이가 되었다고 했나보다.

노년의 즐거움은 잘 익은 겨울 김장김치 같다. 여러 가지 양념이 잘 섞여 추위를 견디고 발효되어 씹을수록 깊고 감칠맛이 난다. 풋김치의 신선함도 좋지만 익은 김치 또한 그윽한 그 맛은 비할 바가 아니다.

<이재순 인디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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