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자의 성, 라스트 네임

2024-02-21 (수)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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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면 으레 여자가 남편 성을 따르는 것이 미국의 관습이지만, 오래전 결혼했을 때 나는 성을 ‘반’만 바꿨다. 즉 회사에서는 원래의 성을 그대로 쓰면서 가족서류에서만 남편의 성을 따른 것이다. 당시 이미 기자였고 신문에 정숙희 기자로 나가고 있었으니 갑자기 이를 바꾸는 것이 더 이상했기 때문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선배와 동료 여기자들 거의 모두가 신문 바이라인에는 자신의 성을, 가족의 라스트네임으로는 남편의 성을 사용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가 무슨 페미니스트라든가 여권신장을 위해 그랬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 한국서부터 기자생활을 해왔는데 미국에 오니 가족이 하나의 성을 쓰는 것이 보편화돼있으므로 편의상 둘 다 모두 차용한 ‘이중생활’을 하게 된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결혼해도 여자의 성이 바뀌지 않지만 미국을 비롯한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아내와 자식이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부성주의가 오랜 전통이고 관습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에서 이 같은 문화가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는 여성이 많아진 것은 물론, 남편이 아내의 성으로 바꾸는 경우도 있고,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성이 아닌 어머니의 성을 물려주거나 아예 부모의 성을 합쳐서 새로운 라스트네임을 만드는 가족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퓨 리서치가 지난해 2,740명의 기혼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결혼 후 남편 성을 따르는 여성은 79%, 자신의 성을 유지하는 여성 14%, 두 사람의 성을 (하이픈으로 연결해) 함께 사용하는 가정이 5%, 두 라스트네임의 알파벳을 섞어 새로운 성을 지은 가족은 1%였다. 그리고 남자들 중에서 아내의 성을 따른 사람이 5%나 됐다.

자신의 성을 계속 쓰는 여성은 나이가 젊을수록, 학력이 높을수록, 진보적이고 민주당 성향일수록 그 비율이 높았다. 그리고 결혼을 늦게 하는 여성들이 자기 성을 지키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오랫동안 커리어를 쌓아온 만큼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이름이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자기 소유의 집과 자동차 및 기타 재산을 갖고 있는 고소득자 여성이 이름을 바꾸게 되면 소유권과 면허, 보험 상의 이름도 전부 바꿔야하니 불편함이 우선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미씨 유에스에이에서 라스트네임에 대한 갑론을박 중에 이런 글이 있었다. “결혼하면서 제 성 안 바꿨어요. 솔직히 우리 부모님께서 열심히 키워주셔서 의사 됐는데 신랑 이름으로 하기 좀 싫더라구요.” 조금 당차고 얄밉긴 해도 이해 못할 코멘트는 아니다. 이런 반응도 있었다. “미국에서 엄마와 아이의 라스트네임이 다르면 이혼이나 재혼가정으로 오해해서 불편하다고들 하는데 전혀 불편한 거 없어요. 누군가 바꿔야한다면 남편보고 제 성으로 바꾸라고 할 거에요.”

사회가 많이 변했으니 이런 변화들은 당연하다. 50년 전만 해도 남녀가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핵가족이 ‘정상적인’ 가정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현재 미국에 이런 정상적인 가족은 17.8%에 지나지 않는다. 반대로 혼자 살고 있는 싱글 가구가 전체의 28%,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성인은 34%나 된다.(2021년 인구조사국 통계)

이와 함께 성 정체성이 다양해졌고, 결혼과 가정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달라졌으며, 가정의 형태도 계속 진화하며 분화하고 있다.

‘남녀의 결합’이었던 결혼은 이제 개인의 선택에 따라 결혼하지 않거나, 늦게 결혼하거나, 결혼해도 아이를 갖지 않거나, 여자끼리 또는 남자끼리 결혼하여 아이를 입양 또는 대리모 출산하거나 등등 한두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새로운 패밀리의 모습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또 전통적인 여성성과 남성성, 어머니와 아버지 역할에 대한 기대가 많이 허물어졌다. 여성이 돈을 더 많이 벌거나 가장인 가족도 많고, ‘집안의 기둥인 아버지’보다 이혼 후 양육비도 내지 않고 나 몰라라 하는 남성이 많아진 상황에서 왜 꼭 여자가 남자의 성을 따라야하고 왜 자식에게 아버지의 성을 물려주어야하는가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 “그들은 왜 아내의 성을 택했나”라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결혼하면서 자신의 성을 버리고 아내의 성을 라스트네임으로 택한 남편들 이야기다.

의외로 몇몇 이유는 이름의 발음과 어감 때문이었다. 한 남성은 자신의 라스트네임이 길고 발음하기 어려워서 상대적으로 짧고 쉬운 아내의 성을 택했다고 했다. 또 다른 남성은 자랄 때부터 너무 특이한 자신의 성이 싫었다며 아이들에게는 평범한 성을 물려주고 싶어서 아내의 성으로 바꿨다고 했다. 한 커플은 아내가 남편의 성이 싫다고 해서 그녀의 성을 패밀리네임으로 정했다고 했고, 또 다른 남성은 아버지를 본 적도 없이 자랐는데 아내의 가족에게 아들이 없는 것을 보고 미련 없이 그 가족의 일원이 되기로 했다고 고백했다.

한국 문화권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족보와 본관을 따지고, 어떤 일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맹세할 때 “내 성을 갈겠다”고 하는 한국인들에게 남자가 여자 성을 따른다는 것은 “손에 장을 지지는 것”과 같은 일이 될 것이다.

이름은 정체성이다. 결혼을 떠나, 성 평등 이슈를 떠나, 한국과 미국의 출신지를 떠나, 자신을 누구로 규정하고 싶은지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35년 전, 신문에 이름이 나오는 기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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