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장면이 있다. 대통령 당선자가 성경에 손을 얹고 헌법에 따라 “나는 미국 대통령으로서 임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최선을 다해 헌법을 보존 보호 및 수호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선서하고 헌법이 요구하지 않는 “하나님 나를 도와주소서”(So help me God)라고 짤막한 기도를 한 뒤에 선서순서를 마치는 장면이다.
모든 대통령들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데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를 간구하는 기독교 정신이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이다. 6대 존 퀸시 아담스는 법전에 손을 얹고 선서를 했다. 그리고 36대 린든 존슨대통령이 또 법전을 사용했다. 1963년 11월22일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직후 당시 부통령이었던 그가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취임선서를 했을 때 비행기 안에 성경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법전을 사용했다.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1789년 4월30일 뉴욕에서 자기가 늘 읽어왔던 성경에 왼손을 얹고 헌법에 따른 선서를 한 뒤 바로 규정에 없는 “하나님 나를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취임식에 사용했던 성경은 대통령에 따라 여러 아름다운 사연들을 담고 있다. 16대 아브라함 링컨은 여덟 살에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 물려준 성경을 대통령 취임식 선서에서 사용하려고 했으나 이삿짐이 백악관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법원 직원에 성경을 빌려서 썼다. 조지 워싱턴이 선서에서 사용했던 이른바 워싱턴 성경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인기가 높다. 워렌 하딩,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지미 카터, 조지 부시 대통령 등이 워싱턴 성경을 택했다.
35대 존 케네디 대통령은 노예제도 폐지 지도자 해리엇 터브먼의 성경을 택했다. 22대 스티븐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어머니 성경을, 42대 빌 클린턴 대통령은 할머니 성경을, 44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마틴 루터 킹 목사 성경과 링컨 성경을, 45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어머니 성경을, 그리고 현 46대 조 바이든 대통령은 가족유산 가톨릭 성경을 사용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할머니나 어머니 성경을 사용한 대통령은 있어도 할아버지나 아버지 성경을 사용한 대통령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1948년 7월24일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취임식이 거행됐다. 이승만 당선자는 오른 손을 들고 다음과 같은 선서를 했다. “나 이승만은 국헌을 준수하며 국민의 복리를 증진하며 국가를 보위하며 대통령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 할 것을 3,000만 국민과 하느님에게 엄숙히 선서한다.” 이승만 대통령도 대통령 직무 수행에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한 것이다.
그 뒤 7대 김영삼, 10대 이명박 대통령 등 개신교 대통령들과 8대 김대중, 12대 문재인 대통령 등 천주교 대통령 등 기독교 대통령들이 있었으나 이승만 대통령을 제외하고 선서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왜 그럴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예비선거와 여론조사의 결과를 보면 오는 11월에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천주교인인 현 대통령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와 기독교교인인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가운데 한 기독교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뽑힐 것이다.
누가 당선되던 취임식에서 전임 대통령들이나 본인들이 과거의 취임식에서 보여주었던 대로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할 것이다. 어느 후보가 뽑히던 당선된 후보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가 충만하여서 미국의 앞날을 잘 인도하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
허종욱 전 한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