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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서 정치를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2024-01-18 (목) 윤민혁 서울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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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테크쇼.’ 매년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의 화려한 별명이다. CES 2024도 다시 한 번 역대 최대 규모를 경신했다. 약 7만 평에 달하는 전시장, 4,300여 개의 부스, 150여 개 국가에서 온 13만 5,000명의 참관객. 주최사 소비자기술협회(CTA)가 행사 종료와 함께 밝힌 숫자는 압도적이기만 하다.

모든 빛에는 그림자가 있다. CES는 날로 위상을 더해가고 있지만 정작 매해 CES를 찾는 테키(Techie·기술 애호가 또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볼 게 없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실리콘밸리 터줏대감 중에서는 CES 2024를 찾지 않았다는 인물도 다수다. “비대해진 외형에 ‘수박 겉핥기식’ 참관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팠다. 소비자 가전쇼인 CES가 가전의 한계를 넘어 모빌리티·헬스케어 등으로 확장해 전시의 규모를 키우는 데는 성공했으나 화려함의 뒤편에서 진지한 기술적 논의는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스타트업이 혁신보다 트렌드를 좇는 데 급급하다는 비판도 들려온다. 메타버스 붐이 일었던 2022~2023년 스타트업관 유레카파크에는 메타버스 관련 기업이 쏟아졌지만 올해는 기세를 잃었다. 2년 전 메타버스와 인공지능(AI)을 들고 CES를 찾았던 기업이 올해는 같은 기술에 ‘생성형’이라는 한 단어만 붙여서 설명할 때, 수년 전 혁신상을 거머쥐고 주목받던 스타트업이 몇 년째 똑같은 전시만 할 때는 허탈감이 느껴졌다. 빛나던 첫 인상만큼 실망감도 컸다.


좁아지는 미국의 입지도 우려스럽다. “CES가 아니라 KES(한국 전자쇼)”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참가 기업 4,300여 개의 국가별 구성은 미국 1,201개, 중국 1,115개, 한국 784개, 대만 179개, 일본 50개 등으로 동아시아 3국 기업이 전체 절반에 달한다. ‘남의 나라 잔치’를 반기는 국가가 어디 있을까. 기자와 만난 한 대기업 계열사 대표는 “내년 중국 참여사가 미국을 넘어선다면 행사의 매력과 지속성에 의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와 공공기관들의 CES 참가를 고깝게 보는 시선도 있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기업명 대신 지자체·공공기관 이름이 적힌 단체복을 입은 스타트업 직원들도 보였다. 주인공이 돼야 할 기업이 홍보용 ‘간판’으로 전락한 경우다. 유레카파크를 점령한 ‘통합 한국관’의 위용은 감동적이었으나 한국관이 ‘장벽’이 돼 정작 만나야 할 글로벌 투자가들이 진입을 꺼릴 수 있다는 우려에도 동의가 됐다.

그러나 이 모든 아쉬움과 우려에도 CES는 여전히 글로벌 시장을 향하는 가장 거대한 창이다. 테키들의 피로감 뒤편에서, 누군가에게는 CES가 일생일대의 기회로 다가온다. KOTRA 지원으로 CES 2024를 찾은 장애인 보조기기 전문 기업 ‘만드로’와 AI 오디오 전문 기업 ‘가우디오랩’은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를 마주했다. 영남대 경산캠퍼스에 자리 잡은 스타트업 ‘리플라’는 재활용 플라스틱 순도 측정기기로 혁신상 2개를 거머쥐는 쾌거를 이뤘다. 기관과 지자체 지원 없이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까.

정치인의 CES 참가도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 유력 정치인의 부스 방문은 향후 스타트업 투자 유치에 큰 도움이 된다. 기자와 친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올해 서울시 지원으로 CES에 첫 참가했다. 그는 예산 활용과 운영에 답답함을 토로했으나 서울시의 도움과 오세훈 시장의 참가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야당 지지자다.

무엇보다 날로 늘어가는 학생 참여가 고무적이다. 인텔 모빌리티 반도체 세션에서는 대학 후원으로 CES를 찾은 한국의 전기전자과 학생들을 만났다. ‘지커’와의 협력 소식 취재를 위해 소수의 중국 기자가 찾았을 뿐 관심도가 낮은 세션이었다. 차량용 반도체 설계에 관심이 커 등록조차 힘든 세션을 물어물어 찾아왔다는 학생들의 형형한 눈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15년째 CES를 찾고 있는 최형욱 퓨처디자이너스 대표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결정권자들을 만나 불가능한 딜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여전히 열려있습니다. 부작용은 자정하면 될 뿐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우면 안 됩니다.”

<윤민혁 서울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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