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 대학에서 제일 먼저 대했던 과목은 해부학인데, 하얗고 싸늘한 느낌이 드는 해부학 실험실도 으스스 했지만, 표정 없는 날카롭게 생기신 해부학 교수님이 첫 시간부터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살아온 정신 상태로는 바른 의사가 될 수 없으니 정신을 개조해야 되겠다.” 라며 고쳐야 될 마음과 태도를 조목조목 나열하시면서,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낙제 될 것이라 예고 하셨다. 머리카락이 바짝 서는 느낌이었다. 교수님은, 이어서 “여러분은 결단력 있는 사자의 심장을 가져야 되며, 날카로운 독수리의 눈, 여자의 섬세한 손, 이솝 이야기에 나오는 여우처럼 빠른 두뇌를 가져야 됩니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님은 다시 물으셨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정신상태가 바르지 못하면 무엇이 되는지 아십니까?”, “소매치기 밖에 더 되겠습니까?” 모두 “와” 하고 웃었지만, 그 이야기는 지금도 나의 뇌리를 맴돌고 있다. 의사의 눈은 날카로워야 하지만 생각과 마음이 올 곧지 않으면 바르게 볼 수도 없고 판단도 흐려진다.
요즘 우리들은 코로나 혹은 독감 바이러스를 옮길까봐 서로 피하게 되었는데 의사도 아픈 환자를 보면 종종 피하고 싶은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아픈 사람은 피해야 될 대상이 아니라 도움이 더 필요한 분으로 보아야 되는 의사의 눈이 흐려졌다.
병원에서 업무를 평가하는 회의에 참석하여 관계자들이 어떻게 이야기 하는지를 유심히 보면서 느낀 것이 있다, 어떤 책임자는 성적이 나쁜 팀이나 개인에게 혹평을 하거나 야단을 치지 않고 “당신은 향상 시킬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있습니다.” 라는 표현으로 격려를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못한 사람을 깎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주눅 들어 있는 사람에게 기분 좋게 용기를 주는, “부족한 것은 향상시킬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뜻이다.”라고 생각하는 여유와 지혜를 배웠다. 의학적 치료 분야에서도, 어려운 질병이나 상태가 좋아지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경우에 종전의 치료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하여 발전하고 획기적으로 좋아지는 경우를 본다.
치료하기 어려웠던 심한 천식에도 치료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스테로이드를 포함한 전통적인 천식약은 천식의 발작을 효과적으로 막아주거나 조절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 년에 몇 번씩 응급실을 찾아야 했던 천식 환자들에게 바이오로직 약품의 출현은 획기적인 일이다. 전통적인 화학 합성으로 얻어지는 합성 의약품과 대조되는 개념의 바이오 의약품은, 살아있는 생물체로부터 얻어지는 의약품을 말한다.
천식의 발작 후 기관지를 넓히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아예 천식이 시작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생각하였다. 천식을 일으키는 원인(알레르겐)은 몸에 들어온 후 IgE 항체에 결합한 후 연결되어있는 마스트세포 안에 있는 각종 물질을 분비시킴으로써 천식을 일으킨다. 새로 개발된 ‘졸레어’란 바이오 의약품은 IgE 항체에 천식의 원인(알레르겐)이 붙을 자리에 결합해버려 천식이 아예 시작되지 않도록 막아 버린다. 이 종류의 약은 예전 약보다 효능이 매우 좋아서 천식이 심한 환자의 병원 입원 횟수를 놀랍게 줄여주고 있다. 또 올해에 집중적인 관심을 끄는 당뇨약 ‘오젬픽’은 1주에 한 번씩 주사를 맞는 당뇨약으로 개발되었는데 부작용으로 살을 빠지게 하는 것을 알게 된 후, 비만인 당뇨 환자들에게 사용함으로써 당뇨와 비만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되어 각광을 받고 있다. 부작용을 역이용하여 성공하고 있는 경우이다. 이러한 의학적인 발전은 종전에 생각하던 질병치료에 대한 관점과 생각의 전환에서 이루어졌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게 된다. 우리의 부족함과 어려운 상황은 오히려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어두울수록 밝아질 가능성이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에겐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라고 서로 말하며 힘차게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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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