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올 한해가 곧 저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면서 또는 즐기는 와중에서도, 마침내 축제를 끝내고서는 더욱더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아가 삶 전체를 반추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주로 이맘때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물러나고 물려주고, 안고가거나 뿌리치거나, 받을 것과 갚을 것, 성과와 아쉬운 점. 개인도 단체도 차분하면서도 분주하게 장부책에 기록하듯 정리하는 시점이다.
이렇게 대차대조표를 그려놓고 직접 채워나가면서 가만히 살펴보면, 선을 쌓고 덕을 짓는 차변의 자산과 더불어 대변에는 상처를 받고 은혜를 입은 것에 따른 채무, 즉 마음의 빚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네 삶은 선행과 덕행을 통한 자산증식도 중요하지만, 마음 한켠에 있는 부채의식을 어떻게 떨치고 살아가야 하느냐에 대한 성찰도 그 의미가 크다.
양귀자가 장편소설 ‘모순’에서 묘사했듯이,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잊어버린다. 받은 상처는 반드시 받아내야 할 빚이라 생각하고, 입은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으로 여긴다. 인간의 마음속에 정리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는 빚에 대한 모순된 심리를 참으로 솔직하고 통렬하게 지적한 글이다.
우리의 삶은 생로병사가 맞물리고 희노애락이 혼재한 가운데 상처와 은혜를 서로 주고받으며 뒤엉켜 돌아간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상처와 은혜는 우리의 뇌리에서 쉬이 사라지지 않고, 두고두고 우리의 가슴 속에 숨어 있다가 불쑥 불쑥 튀어나온다.
바쁜 생활 중에도 과거에 받았던 고마운 기억이 불현듯 떠오를 때에는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삶에 새로운 동력을 얻게 되고, 비록 그 은혜의 ‘빚’을 직접 되갚는 기회를 갖지 못해도 부모의 내리사랑처럼 다른 이웃들에게 베푸는 마음이 들게 한다. 결국 은혜는 선순환을 일으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자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이다.
반면, 상처는 오래 간직할수록 곪아서 썩기 쉽고, 곱씹어 되새길수록 골이 깊게 패여 상처는 더 커진다. 결국 상처를 상처로써 끌어안고 살아간다면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상처로 인해 마음에 길게 드리워진 ‘빚’이라는 그늘은 결국 ‘빛’나는 자존감과 용서라는 ‘빛’나는 용기로 지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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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김 / 전 재미부동산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