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발성 위기(poly-crisis)의 시대’. ‘악의 축’. 더 나가 ‘폭정체제의 축’. 그리고 ‘혼란의 축(The Axis of Disorder)’. 반자유주의(illiberalism)….
코비드 팬데믹을 겨우 견뎌냈다. 그러자 바로 뒤따른 것이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년째 이어지고 있다. 가자지역에서 튄 불똥은 전 중동지역으로 번져나갈지도 모른다. 3년 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사이 전면전의 원인이 됐던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또 다시 무력충돌 사태가 발생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쿠데타의 연속이다. 전쟁의 위험은 그리고 동아시아지역에서도 계속 고조되고 있다.
2023년에 벌어진 상황으로 이와 함께 미 언론을 수놓은 단어들이다. 그 단어, 단어들이 하나같이 그렇다. 난세, 그것도 천하대란의 임박을 알리고 있다고 할까.
그 계묘(癸卯)년을 뒤로 하고 새로 펼쳐지는 갑진(甲辰)년. 오는 2024년은 ‘세계 사상 최대 선거의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인구수로 랭킹을 정할 때 톱 10에 드는 인도, 미국, 브라질, 인도네시아, 멕시코, 러시아, 파키스탄 등 거의 대부분 나라에서 전국 규모의 선거가 치러진다. 전 세계적으로 76개 국가에서 선거가 실시돼 수 십 억의 세계인들이 ‘한 표 행사’에 들어가는 것이다.
‘투표함을 향한 대행진’- 2024년에 벌어질 이 거대 현상. 이는 그렇다고 민주주의의 폭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선거는 치러진다. 그런데 자유와 공정이 보장된 게 아니다. 러시아, 인도네시아, 터키 등 28개국 권위주의 체제에서 이런 식으로 선거가 치러져 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 ‘세계 사상 최대 선거의 해’인 2024년은 천하대란의 위기를 극복하느냐 마느냐 건곤일척(乾坤一擲)의 해가 될 것이라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지의 전망이다.
천하대란을 불러오고 있는 병원체 같은 존재. 그 행위자는 누구인가. ‘푸틴의 러시아, 이란 회교혁명정권, 그리고 하마스, 헤즈볼라 등 일단의 이슬람 테러리스트 그룹이다.’ 미기업연구소(AEI)의 마이클 마자의 지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전쟁 등 앞서 열거한 전쟁들의 배후에서 꿈틀대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세력들이다.
그들을 음으로 양으로 돕는다. 겉으로는 평화 중재자인 양 행세하고 있다. 그러나 평화라든지, 안정, 정의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무질서, 혼란이 가중될수록 수지가 맞는다는 계산에서다. 이게 시진핑 중국의 입장이다.
러시아, 이란 회교혁명정권, 중국, 그리고 북한의 김정은 체제. 그들이 원하는 세계는 서로 다소간 다르다. 이 세력들은 그러나 한 가지 이해를 공유하고 있다. ‘규칙에 기초한 국제질서(rules-based international order-RBIO)’를 어떻게든 파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RBIO는 단지 냉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형성된 국제질서가 아니다. 계몽주의, 과학과 산업혁명, 민주화 물결, 전 세계적인 인권운동을 통해 이루어진 질서다.
30년 종교전쟁을 종식시키고 주권국가의 대내적 최고성과 대외적 독립성, 이에 따른 내정불간섭 권리와 국가 간 평등성을 보장한 베스트팔렌 체제가 그 근간으로 RBIO는 오늘날에는 자유민주주의 세계의 대의(大義)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규칙에 기초한 국제질서’하에서 세계는 전례 없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맞이했다.
우크라이나란 나라는 존재할 수 없다. 서해에서 동중국해, 남중국해에 이르는 광대 해역에 멋대로 선을 긋고 영유권을 주장한다. 이스라엘은 멸절 대상일 뿐이다. 푸틴이, 시진핑이, 이란 회교혁명 정권이 추구하는 세계다. 그러니까 이웃나라의 주권은 안중에 없다. 그저 정복대상일 뿐이다.
이 세력들의 준동과 함께 냉전이후의 세계질서는 심한 골절상을 입었다는 게 안보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지적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RBIO란 대의의 회복’이 그 방안이란 것이 이어지는 진단이다. ‘규칙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존중하는 주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단합, 더 나가 외연확장이 그 첩경이라는 거다.
관련해 이코노미스트지는 ‘세계 사상 최대 선거의 해’인 2024년을 세계적 혼란을 마감하고 새 질서 구축에 나설지 아니면 나락으로 떨어질지 그 갈림길의 해가 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이 맥락에서 내년 76개국에서 치러지는 선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로 이코노미스트지는 미국의 대선을 지목했다. 규모는 훨씬 작지만 상당한 파급력을 가진 선거로는 대만의 총통선거를 주목했다. ‘RBIO 사수’ 최전선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게 대만이고 중국이 노골적으로 간섭하고 있는 게 대만의 선거이기 때문이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선거가 대한민국의 22대 총선이 아닐까. 반자유주의의 물결이 넘실댄다. 86그룹보다 더 시대착오적이다. 그런데다가 더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이다. 그런 한총련출신 97운동권이 이재명을 숙주로 정치전면에 부상했다. 그리고 공공연한 사회질서 파괴에 나섰다.
거기에다가 그 종북세력에 호응이라도 하는 듯 중국공산당의 한국에 특화된 맞춤형 공작이 버젓이 진행되고 있다. 허위조작정보를 멋대로 유포하면서. 그 결과 정체성을 중국공산당과 공유하는 종북좌파세력이 22대 총선에서 승리한다.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윤석열 정부는 당장 식물정권이 되고 만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최전선인 동아시아 전선에는 거대 균열이 발생한다. 그 여파는 서해에서, 동중국해, 남중국해로 이어지면서 자칫 반자유주의 쓰나미를 몰고 올 수도 있다.
선거의 해를 맞아 어딘지 위태해 보이는 대한민국. 정말이지 기도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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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