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메디캘 환자들 ‘아파도 갈 병원이 없다’

2023-12-15 (금) 12:00:00 석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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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 수가 턱 없이 낮고 지나친 감사 등 부담감

▶ 한인의사 70~80% 거부

오렌지카운티에 거주하는 한인 박모(46)씨는 저소득층 건강보험인 메디캘(Medi-Cal) 가입자다. 몇 달 전부터 명치 아래 부근에서 미세한 통증을 느꼈다. 손으로 만져보니 작은 멍울이 만져졌다. 박씨는 주치의 오피스에 전화해 최대한 빠른 날짜로 진료 예약을 잡았다.

매일을 불안감에 시달리며 주치의를 만나는 날만 기다리던 박씨는 진료일 하루 전날, 병원으로부터 “더이상 메디캘 환자를 받지 않는다”는 일방적인 통보 전화를 받았다. 박씨는 다른 여러 병원에도 전화를 걸어 메디캘 환자를 받아주는지 물었지만, 대부분 병원의 대답은 ‘안 받는다’였다.

저소득층을 위한 주정부 건강보험인 메디캘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들이 수년간 감소세를 보이더니, 이제는 메디캘 가입자가 주치의를 만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메디캘 환자들은 아픈 곳이 있어도 갈 병원을 찾지 못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또 다른 메디캘 가입자 최모씨는 “메디캘을 취급하는 병원이 인근에 거의 없다”며 “커뮤니티 헬스센터가 유일한 대체제이지만, 그곳은 없던 병도 걸려올 것만 같은 매우 열악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토로했다.

메디캘을 취급하는 병원이 점차 사라지는 이유는 주정부가 메디캘 프로그램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주정부가 메디캘 환자를 치료한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의료수가(reimbursement)가 매우 낮아 병원의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LA한인타운의 한 클리닉 관계자는 “의사들이 메디캘 환자를 꺼리는 이유는 파행적인 구조 때문”이라며 “메디캘은 일반 건강보험이나 메디케어에 비해 보험 수가가 3분의 1 정도로 낮고 정부가 메디캘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기관에 대해 지나친 감사를 하고 있어 의사들이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주정부는 메디캘 환자를 거부할 수 있는 의사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기관에서 메디캘 환자를 받지 않는 것은 불법 행위가 아니다. 현재 남가주 지역에서 한인 의사들이 운영하는 의료기관 가운데 최소 70~80%가 메디캘 환자를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캘리포니아 전체적으로도 메디캘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진료하는 의사 수가 턱없이 모자르다는 지적은 수년간 지속돼 왔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메디캘 관련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한편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주 전역의 메디캘 환자 수는 급격하게 늘었다. 캘리포니아주 보건국에 따르면 주민의 3분의 1 이상인 1,540만명이 현재 메디캘에 등록돼 있다. 지난 2020년 3월부터 2023년 2월까지 메디캘 등록자 수는 16% 증가했다.

<석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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