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서, 이스라엘 가자지역에서,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전쟁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거기에 더해 전쟁의 도미노는 급기야 라틴 아메리카로 번질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저물어 가는 2023년 계묘년(癸卯年). 그 끝자락에 전해지고 있는 뉴스들이다.
좌파 포퓰리스트 우고 차베스의 뒤를 이은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가 이웃 나라 가이아나의 ‘자원 노다지’ 지역을 국민투표를 통해 자국 영토임을 선포,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이은 가자지구 전쟁으로 미국의 병기창은 바닥날 지경이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 타이밍에 마두로는 푸틴의 수법을 본 떠(?) 이웃 나라 금싸라기 땅의 자국 편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은 또 다른 전쟁에 말려들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가고 있다.
마두로의 독자적 결정일까, 아니면 유럽과 중동지역에 이어 또 다른 전선을 열어 미국의 힘을 분산시키려는 음모가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것인가. 추측이 난무 하고 있다.
그 가운데 ‘워싱턴의 2023년 판 버즈워드(buzzword)’를 둘러싸고 새삼 논란이 일고 있다.
‘악의 축(Axis of evil)’이 바로 그 버즈워드다. 2023년 판 신조어가 아니다. W 부시 대통령이 1992년 연두교서 발표에서 테러지원국 이란, 이라크, 북한을 지칭해 한 말이다. 그러니까 20여년 만에 다시 소환된 일종의 재활용 용어다.
“‘악의 축’은 존재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이 그것이다.” 연방 상원 공화당 지도자 미치 맥코널의 발언이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뛰어든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도 ‘악의 축’이 지배하는 사태를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치인뿐만이 아니다. 워싱턴에 포진한 각종 싱크 탱크와 논객들 간에도 이 용어 사용이 유행이다. ‘악의 쿼드’, ‘폭정체제의 축’ 등 다소 변형된 형태와 혼용하면서.
전쟁으로 점철된 오늘 날 세계정세와 관련해 ‘악의 축’의 역할을 비교적 극명히 밝히고 있는 논객은 워싱턴 프리 비콘의 매튜 콘티네티다.
그는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아프리카 일부지역을 휩쓸고 있는 전쟁 등 일련의 상황을 서방의 ‘규칙에 기초한 국제질서(rules-based international order-RBIO)’를 무력으로 뒤집으려는 일관된 시도로 지적하면서 러시아, 이란, 북한이라는 세 마리 미친개를 중국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꼴로 상황을 파악해 설명하고 있다.
이 ‘악의 축’ 논리를 모두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북한, 이란, 러시아를 한 축으로 묶는 것 까지는 어느 정도 수긍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까지 ‘악의 축’ 일원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 일각에서의 지적이다. 지나친 단순화의 시각으로 복잡다단한 국제문제를 재단 할 때 위험이 따른다는 비판이다.
이 ‘악의 축’이란 용어는 이라크 전쟁 실패라는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인지 더 반박의 대상이 되고 있다.
‘워싱턴의 버즈워드로 새삼 떠오른 악의 축. 그 사실 자체가 미국은 달라진 안보환경을 맞이하고 있고 미국의 해외정책에도 대대적 변화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의 지적이다.
‘다극체제는 잊어라. 양극체제로의 회귀와 함께 가치관이 전혀 다른 두 세력 간의 거대 갈등이 이미 시작됐다. 그 갈등은 단계적으로 펼쳐지면서 일부지역에서는 열전의 형태로 상당기간 지속되고 다른 지역에서는 냉전 형태로 전개될 것이다.’
‘달라진 안보환경’, 그리고 그 환경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고, 또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해 미 대외정책연구소(FPRI)의 로버트 카플란이 내린 진단이다.
이 양극화된 세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러시아와 북한 같은 갱스터 국가들과 중국과 같은 전체주의 체제, 이란 같은 테러리스트 국가다. 이들 서방의 적대세력은 과거 냉전시대 소련과 마오쩌둥의 중국보다 더 위험한, 더 가공스러운 세력이란 것이 그의 평가다.
과거 소련의 지도자들은 스탈린의 대숙청,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탓인지 모험주의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리고 실제로 쿠바 사태로 귀결된 모험주의 해외정책을 편 후르시초프는 결국 실각했다. 그리고 마오쩌둥도 국내적으로는 대약진운동에, 문화대혁명의 대참화를 불러왔지만 해외정책은 이성적으로 처리했다.
이들과 비교할 때 푸틴, 시진핑, 김정은 등은 천성적으로 불안정한 인물들이라는 게 이어지는 카플란의 지적이다.
이 모든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전개될 수도 있는 두 세력 간의 갈등은 종전의 열강 간의 전쟁에다가, 테러전쟁이 가미된 형태가 될 수 있고, 또 과거 냉전시대보다 더 위험한 대결상황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리고 있다.
요약하면 이런 이야기가 아닐까. 잇단 전쟁 등 지구촌 곳곳으로 번져나가고 있는 폭력상황은 ‘규칙에 기초한 국제질서(RBIO)’를 둘러싼 전체주의, 테러주의, 폭력혁명주의 혼합세력, 다시 말해 ‘악의 축’과 자유 민주주의 현상유지세력이 빚고 있는 갈등, 그 전초전으로 앞으로 그 갈등은 보다 파괴적 국면에 접어들 수도 있다는 그런….
이제 3주 만 지나면 2024년 갑진(甲辰)년이다. 어떤 뉴스가 다가오는 새해 벽두를 장식할까. ‘마두로의 베네수엘라 마침내 군사작전 시작’, 아니면 ‘중국 인민해방군 대만해협 봉쇄에 들어가’일까. 2024년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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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