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괴물이 누구인가를 인내심 갖고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

2023-12-08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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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괴물’(Monster) ★★★★(5개 만점)

▶ 실타래를 풀어가듯 서술하고 미스터리 분위기마저 감돌아

“괴물이 누구인가를 인내심 갖고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

미나토(오른 쪽)와 요리는 도시와 어른들을 피해 자연 속에서 우정을 쌓아 올린다.

‘도둑 일가’(Shoplifters), ‘스틸 워킹‘(Still Walking), ‘폭풍 후’(After the Storm) 등과 같은 영화에서 가족의 얘기를 인자하고 인간성 가득하게 그린 일본의 히로카주 코레-에다 감독의 영화로 올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탔다. 그가 송강호를 주연으로 한국서 만든 ‘브로커‘(Broker)도 가족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코레-에다는 아이들의 심정을 절실하게 잘 묘사하는데 ’괴물‘도 주인공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중 과연 괴물이 누구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누가 누구에게 어떤 행동을 가했으며 또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를 궁금하게 만들다가 촘촘히 엮어진 실타래를 서서히 풀어가듯이 서술하고 있어 미스터리 분위기마저 나는데 영화의 핵심은 작품 맨 마지막에 가서야 들어난다.

겹겹이 쌓인 플롯을 세 사람의 관점에서 얘기하고 있고 이들에 의해서 궁금한 의문들이 차례차례 밝혀지면서 결론을 찾아가는데 아키라 쿠로사와의 ‘라쇼몬’을 연상케 만든다. 보고나서도 곰곰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여서 다소 인내심이 필요하다.


영화는 일본의 호수 가에 있는 한 작은 도시의 건물이 불타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호스테스 바가 있는 이 건물의 화재는 방화에 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화재를 아파트에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이 초등학교 5학년의 미나토(소야 쿠로카와)와 그의 홀어머니 사오리(사쿠라 안토). 헝클어진 머리를 한 침울하고 강한 성격을 지닌 미나토를 사오리는 극진히 사랑한다. 맨 먼저 사오리의 관점에서 내용이 서술된다.

그런데 미나토가 “내가 돼지의 뇌를 가졌다면 나는 과연 사람이냐 아니면 돼지냐”라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귀에서 피를 흘리고 또 운동화 한 짝을 잃어버리는가 하면 머리를 자르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자 사오리가 아들에게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캐묻는다.

미나토가 어머니에게 담임선생 호리(에니타 나가야마)가 때려서 그렇게 됐다고 대답하자 사오리가 학교를 찾아가 얌전한 모습의 여교장 마키코(유코 타나카)에게 항의한다. 이에 마키코가 호리를 호출해 함께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면서 사과를 하지만 호리는 억지 사과를 하고 있다. 그가 왜 그런지는 호리의 관점에서 얘기되는 두 번째 부분에서 밝혀진다. 그런데 마키코는 나름대로 슬픈 경험을 지니고 있다.

호리의 얘기가 나오면서 미나토가 어머니에게 말한 내용의 보다 상세한 부분이 밝혀진다. 그리고 미나토가 급우들로부터 시달림을 받는 고독한 요리(히나타 히라기)를 좋아하면서도 급우들의 눈치를 보느라 자기 감정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요리는 술꾼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에게 시달림을 받고 있다.

마지막 부분은 미나토의 관점에서 얘기된다. 미나토와 요리가 친해지면서 둘은 도시의 번잡과 어른들을 피해 숲 속에 버려진 객차 안에서 카드놀이를 하면서 우정을 다독이는데 여기서 미나토의 요리에 대한 우정이 우정 이상의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 암시된다. 이 것이 미나토가 요리를 좋아하면서도 그런 심정을 나타내지 않은 까닭으로 너무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어른들에 의해 제대로 이해 받지 못하는 감정이 영글어가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당부하는 얘기로 쿠로카와가 순진하면서도 성숙된 뛰어난 연기를 한다. 그 밖에 안도와 타나카 등 다른 배우들도 좋은 연기를 한다. 가슴에 짙은 여운을 남기는 것이 ‘마지막 황제’로 오스카상을 탄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를 주로 한 음악이다. 그리고 촬영도 좋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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