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물길 따라 철길 따라… 두 바퀴에 가을의 서정을 싣고

2023-12-01 (금) 남양주·양평=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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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당역~신원역 중앙선 폐선로 자전거길

경기 남양주 팔당역에서 양평 신원역까지 중앙선 폐선로를 활용한 자전거길은 충주까지 이어지는 ‘한강종주자전거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으로 꼽힌다. 남한강자전거길이라고도 부르는 이 길은 큰 오르막과 내리막 없이 말끔하게 포장돼 있고, 녹슨 기찻길과 추억의 간이역도 남아 있다. 자전거길에서 조금 벗어나면 그윽한 강변마을에 역사 속 큰 족적을 남긴 인물과 만난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눈부신 가을의 서정으로 달리는 길이다.

■허름한 간이역과 다산유적지

자전거가 없는 이들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팔당역, 운길산역, 양수역, 신원역 주변에 대여소가 있기 때문이다. 팔당역은 남한강을 거슬러 오르는 자전거길의 실질적인 출발점이다. 역 광장 오른편에 위치한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팔당역에서 신원역까지는 약 16km, 평시 자전거를 즐겨 타는 이들에겐 쉬운 거리지만, 잠깐 빌려 타는 여행객에게 왕복 32km는 부담스럽다. 이럴 경우 팔당역에서 빌려 신원역에 반납해도 된다.


팔당역에서 양평 방향으로 조금 이동해 전철 아래 굴다리를 통과하면 바로 자전거길이 시작된다. 폐선로에 닿기까지 짧은 오르막을 제외하면 거의 평지다. 2008년 경의중앙선 복선전철이 개통된 후 폐쇄된 선로는 2011년 자전거길로 부활했다. 산비탈로 이어지는 길 오른편으로 팔당댐을 통과한 강물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인다. 강 언저리 날카롭게 돌출한 바위에 가마우지며 왜가리가 먹이를 기다리며 쉬고 있다.

봉안터널을 통과하면 우측으로 발갛게 물들어가는 단풍나무 몇 그루가 반기고, 그 너머로 잔잔한 팔당호가 넓게 펼쳐진다. 호숫가에 대형 카페가 자리 잡았고, 바로 앞에 ‘이근호 손편지 정원’이라는 작은 공원도 있다. 쇠로 만든 조각품 끝에 고요한 호수와 팔당댐이 걸린다.

조금만 더 가면 중앙선 선로 이설과 함께 문을 닫은 능내역이 있다. 능내역은 1956년 처음부터 역무원이 없는 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1967년 보통역으로 승격했지만 1993년 다시 간이역으로 격하됐고 2008년 결국 문을 닫았다.

서울을 오가는 주민들이 이용했던 역 내부는 당시를 추억하는 작은 전시실로 꾸며졌지만, 이제 그마저도 빛바랜 과거사로 돌아가는 듯하다. 낡은 간판을 단 외벽은 담쟁이넝쿨이 덮었고, 전시실 불도 꺼져 있다. 외벽에 걸어 놓은 흑백사진 밑에 ‘설레는 날, 너의 곁에’라는 글귀가 붙어 있는데 한 귀퉁이가 떨어져 설렘보다 애잔함이 묻어난다.

능내역에서 약 1.6km 떨어진 곳에 정약용 유적지가 있다. 다산 정약용이 태어난 곳이자 전남 강진에서 긴 유배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머물던 고향 마을로 그의 생가와 묘, 기념관과 실학박물관 등이 함께 있다.

강가에 위치한 마을로 가자면 ‘마재’라는 얕은 언덕을 넘는다. 말을 타고 넘어가던 고개라는 뜻이다. 소설가 김훈은 장편소설 ‘흑산’에서 정씨 가문의 고향 마재마을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강원도 산협을 돌아 나온 북한강과 충주, 여주, 이천의 넓은 들을 지나온 남한강이 마재에서 만났다. 강들은 서로 스미듯이 합쳐져서 물이 날뛰지 않았다. 물은 넓고 깊었으나 사람의 마을을 어려워하듯이 조용히 흘렀고 들에 넘치지 않았다.” 그의 표현대로 유적지와 팔당호 사이에 조성한 생태공원은 푸근하기 그지없다. 이미 잎이 떨어진 커다란 백합나무 아래 벤치에선 여행객이 보따리를 풀어헤치고 소풍을 즐기고 있고, 막 울긋불긋 단풍이 든 키 작은 나무 아래서 담소를 즐기는 이들도 보인다.


■북한강 남한강 끌어안은 두물머리

다시 자전거길로 돌아와 능내역에서 양평 쪽으로 조금 더 가면 조동마을이다. 쉼터에 새소리에 반해 터를 잡은 마을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선로는 사라졌지만 자전거길 양쪽으로 자란 벚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어 기차를 타고 지나는 듯한 느낌은 그대로다.

조동마을을 따라 북한강을 살짝 거슬러 오르던 길은 북한강철교에서 다시 양평 방향으로 틀어진다. 남양주시와 양평군을 잇는 길이 500m 북한강철교는 동양 최초로 능형마름모꼴 트러스를 얹어 조형미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1939년 완공해 한국전쟁 초기 두 차례 파괴되는 곡절을 겪었고 1952년 2월 다시 복구했다. 녹슬고 거칠지만 오래된 구조물 특유의 부드러움이 묻어 난다.

자전거길 전 구간에는 보행자용 길이 따로 있어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구조다. 특히 북한강철교를 걸어서 건너는 여행자가 많은 편이다. 운길산역에서 양수역까지는 2km가 조금 넘는다. 걷기에 부담 없는 거리다.

북한강철교를 건너 바로 오른쪽으로 빠지면 ‘수풀로 양수리’라는 수변공원이다. 아파트가 들어서기로 예정돼 있던 땅을 환경부에서 매입해 공원으로 꾸몄다. 정부는 대개 보존보다 개발을 우선시할 거라는 편견을 깬 현장이다. 철교 아래에는 다리가 놓이기 전 북한강을 건너던 두 나루에 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북한강과 남한강 두 강줄기 사이에 형성된 작은 섬을 흔히 두물머리 혹은 양수리라 부르는데, 두물머리나루가 있던 곳은 섬 남쪽 끝이다. 서울이 아니라 경기 광주로 오가는 나루터였다. 돌떼미나루에서 약 2km로 걸으면 30분, 자전거로는 채 10분이 안 걸린다.

현재 두물머리는 공원으로 조성돼 수도권 주민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물가에 바짝 붙어 뿌리내린 나무일수록 단풍 빛깔이 곱다. 400년 된 커다란 느티나무를 시작으로 키 큰 메타세쿼이아와 사진틀 모양의 조형물이 눈부신 가을 풍경을 빚는다. 섬의 가장 끝자락에 ‘두물경’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양수역에서 신원역까지 자전거길은 5개의 터널을 통과하며 거의 일직선으로 연결된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우측으로 6번 국도 교량 아래로 시원하게 호수가 펼쳐진다. 신원역을 코앞에 둔 마지막 쉼터에는 초가지붕 정자가 강을 바라보고 있다.

팔당역에서 빌린 자전거를 신원역에 반납하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주차장 옆 자전거 거치대에 자물쇠를 채우고, 빌릴 때 받은 전화번호로 알려주면 끝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전철의 배차 간격은 약 20분, 기다림조차 여유로운 여행이다.

<남양주·양평=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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