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조지아주 선거 결과 뒤집기 시도와 관련한 형사재판에서 전임 대통령의 변호인이었던 제나 엘리스, 케네스 체세브로, 시드니 파월이 검찰과의 양형거래에 따라 작성한 진술서 내용이 지난주 언론에 유출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앞으로 전개될 재판과정에서 나올 이들의 증언은 트럼프가 단지 ‘변호인의 조언’을 따랐을 뿐 범행 의도는 없었다는 피고측 주장을 반박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엘리스는 2020년 12월19일, 트럼프의 참모인 댄 스카비노에게 “대통령에게는 이제 더 이상 남은 옵션이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스카비노는 “상관없다. 어쨌든 우리는 (백악관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보스(트럼프)는 어떤 상황에서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권력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증언은 스카비노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 그는 기소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지만, 엘리스의 증언에 따라 조지아주 형사재판의 핵심인 ‘조직범죄’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게 된다.
더구나 스카비노가 당시 트럼프의 생각을 엘리스에게 정확히 전달했고, 자신이 동석한 자리에서 작성된 엘리스의 진술서 내용이 사실이라고 법정에서 직접 증언한다면 트럼프에게 범행의도가 없었다는 주장은 속절없이 허물어진다.
온라인 포럼 ‘저스트 시큐리티’의 공동창업주인 라이언 골드만이 지적하듯 엘리스의 진술은 또 다른 핵심 증인인 캐시디 허치슨이 1.6 의회난입사건 하원 특별조사위원회에서 행한 증언과 일치한다. 2020년 12월11일, 연방대법원은 텍사스주가 조지아, 펜실베이니아, 미시간과 위스콘신 주의 선거결과와 관련해 제기한 소송을 기각했다. 당시 마크 메도우스 백악관 비서실장의 보좌역이었던 허치슨에 따르면 연방대법원의 결정을 알게 된 트럼프는 메도우스 실장에게 “연방대법원에서 우리가 패한 사실을 외부 사람들이 몰랐으면 좋겠다. 이건 당혹스런 일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생각해보라. 꼭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지시했다.
캐시디의 증언이 시사하듯 트럼프 자신도 선거패배를 알고 있었다면 검찰이 그의 범행의도를 입증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골드만은 2020년 12월11일, 대법원의 최종 결정이 나오자 트럼프 진영의 변호인들이 ‘선거결과 뒤집기’ 노력을 포기하고 대열에서 대거 이탈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분명히 말하건대 “나는 내가 이긴줄 알았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효과적인 변론이 될 수 없다. 설사 그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치더라도 허위 선거인단 구성 시도에서 공식 대선인증 절차 방해에 이르는 불법 행동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 반면 그가 자신의 패배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계속 권력을 유지하는데 골몰했다는 증거는 ‘의심의 여지없는 부적절한 의도’를 입증하는데 도움이 된다.
한편 워싱턴포스트는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백악관 모임에서 케네스 체세브로 변호사는 트럼프에게 애리조나주에서 제기된 선거관련 소송에 대해 설명한 후 바이든이 승리한 경합주의 대체 선거인단을 구성해 의회의 선거결과 인증과정에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도록 해야 한다는 조언을 메모로 남겼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사실은 영상 녹화된 체세브로의 진술에 담겨 있다. 체세브로가 법정에서 동일한 증언을 하게 되면 트럼프가 실제 선거 결과와 상충되는 허위 선거인단 구성계획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주장은 힘을 잃게 된다.
시드니 파월은 검찰 진술조서에서 트럼프가 단지 변호사의 조언을 따라 행동했을 뿐이라는 주장을 강하게 부인했다. 파월은 선거법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자신과 루디 줄리아니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며 “다른 변호사들이 그에게 이제 그만 짐을 싸서 떠나야 한다고 말한데 비해 우리 둘만이 백악관을 지키려는 그의 노력을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요약하자면 (1.6 하원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증언한 에릭 허쉬만과 제프리 로젠을 비롯해) 많은 변호인들은 트럼프에게 가짜 선거인단을 구성하고, 당연직 상원의장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선거인단 투표 인증과정에서 바이든이 승리한 경합주의 선거인단 투표결과를 뒤집도록 한다는 계획은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자신은 그저 변호인들의 조언을 따랐을 뿐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해야할 사실은 허위 선거인단 구성 음모 역시 내년 3월4일에 시작되는 2021 1월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연방의회 난입사태와 관련한 연방재판의 핵심 심리 사안이다. 제나 엘리스, 케네스 체세브로, 시드니 파월 등 3인은 연방 재판정에 증인으로 출두해 증언할 수 있다. 만약 이들이 법정에서 기존의 진술을 바꾼다면 검찰과의 형량 거래가 깨지는 것은 물론 위증죄로 처벌을 받게 된다. 줄리아니, 제프리 클락과 마크 메도우스 등 조지아주 재판의 다른 피고인들이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시민단체인 ‘워싱턴의 책임과 윤리를 위한 시민들’(Citizens for Responsibility and Ethics in Washington)의 노먼 아이센과 에이미 리 코퍼랜드는 “엘리스와 줄리아니는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며 “그녀는 선거 뒤집기의 선봉에 섰던 줄리아니와 늘 동행했다”고 말했다. 검찰과의 형량거래에 따라 지난주 조지아주 법정에서 선거사기 혐의에 대해 유죄를 시인한 엘리스는 줄리아니의 위법혐의를 입증하는데 길라잡이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다수의 공화당원들은 사실상 쿠데타를 시도한 트럼프가 MAGA 지지자들에 의해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후 곧바로 중범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으려 든다. 트럼프는 현재 무죄추정의 원칙을 만끽하고 있지만 자당의 대통령후보 지명자가 2024년 대선에서 중범의 신분으로 유권자들 앞에 서게 될 가능성을 철저히 외면하는 공화당의 태도는 정치적 망상에 해당한다.
트럼프의 전 변호인들 입에서 나온 최근의 증거로 트럼프의 유죄가 입증될 가능성이 한결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그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다. 공화당은 지금 그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행여 나중에라도 공화당은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경고를 전혀 듣지 못했다고 변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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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루빈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