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카고 출생… ‘중도 신학’ 성향

2025-05-09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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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미국 출신 ‘레오 14세’는
▶ 20년간 페루 빈민가 사역

▶ “서로 다른 세계 다리 놓고파”
▶ ‘권위주의 경계’ 개혁가 평가도

시카고 출생… ‘중도 신학’ 성향

8일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앞에 운집한 군중들이 새로 교황에 선출된 레오 14세의 모습이 전광판에 비쳐지자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로버트 프란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69)는 교황직 사상 처음으로 미국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1955년 시카고에서 프랑스·이탈리아계 아버지와 스페인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남이 페루에서 20년간 빈민 사목에 헌신하며 페루 시민권까지 얻었다. 이러한 독특한 이력은 북미와 남미를 잇는 교량 역할을 기대하게 만든다. 뉴욕타임스(NYT)와 BBC는 그를 “세계화된 교회를 이끌 중도적 지도자”로 평가했다.

프레보스트 교황은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 입회한 뒤 로마 안젤리쿰 대학에서 교회법을 공부하고 1982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페루 북서부의 추루카나스 교구에서 10년간, 이어 치클라요 교구에서 다시 사목하며 가난한 지역 공동체에 집중했다. 교황청 중앙으로는 2023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명으로 진출했으며, 주교 인사를 총괄하는 주교부 장관을 맡아 개혁 실무를 담당해왔다.

레오 14세는 전임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측근이면서도 신학적으로는 중도적 성향을 지닌 인물로 알려져 있다.


프란치스코가 추진한 교회의 탈중앙화와 성직주의 탈피, 평신도의 역할 확대 같은 개혁 노선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한 그는, 급진적이진 않지만 뚜렷한 방향성을 지닌 ‘조용한 개혁가’로 불린다. 그는 특히 여성과 평신도의 역할 확대에 관심을 두었으며, 남미의 빈민 공동체에서 축적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권위주의적 교회 문화를 경계해왔다.

BBC는 그에 대해 “교회 내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며 서로 다른 세계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인물”이라며, 단 4차 투표 만에 교황으로 선출된 점이 그러한 기대감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레오 14세의 즉위는 미국 내 보수 성향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 그리고 워싱턴 정가와의 외교적 관계에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국 출신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그가 실제로는 미국보다는 남미와 가난한 이들의 삶에 더욱 집중해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미국 교황’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특히 그는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하며, 라틴어와 독일어도 구사할 수 있는 다국적 소통 능력을 지녔다. 이러한 언어적 역량은 다양한 문화와 지역을 아우르는 세계 교회를 이끌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보여준다.

레오 14세가 마주한 과제는 가볍지 않다. 성직자 성 학대 문제에 대한 대응,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포용성 확대, 전통주의와 진보적 흐름 간의 균형, 가톨릭교회 내 권위 구조의 쇄신 등이 주요 이슈다. 특히 보수 강경파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미국 교회 내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시기의 개혁 노선을 어떻게 계승하고 조율할지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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