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금요단상] 마지막 여정

2025-05-09 (금) 12:00:00 전병두 서북미수필가협회 회원
크게 작게
한 씨 부부는 젊은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어수선한 한국의 정치를 뒤로하고 미국에서 꿈을 펼칠 기대에 부풀었던 여정이었다. 친구의 도움으로 편의점을 열기도 하고 햄버거 장사도 했다. LA로, 뉴욕으로. 그리고 알라스카로 거쳐를 옮기면서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도록 열심히 일했다.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다시 오리건주로 내려와 식당을 열었다. 이곳이 마지막 여정이기를 바랬다.

바쁘게 일하던 어느 날 아내의 손에 마비증세가 왔다. 병원을 찾았을 때는 신장 기능이 거의 마비된 상태였다. 한 씨는 부인의 투석을 위해서 일주일이면 사흘을 병원으로 동행하였다. 신장 이식을 기다리던 중 다행히도 혈액이 맞는 기증자가 나타나 이식할 수 있었다. 남편은 언제나 든든한 기둥이었다. 3년 동안 한 씨는 아들과 함께 식당에서 살다시피 일을 하였다. 아들은 늦도록 일을 하고 식당 문을 닫은 후에 퇴근하였다.

한 씨 부부는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볼 때마다 안쓰러웠다. 그날도 아들은 밤 11시가 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손에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이 들려져 있었다. 소파에 앉아서 함께 이야기하던 아들이 조용해졌다. “아들아, 피곤하지. 들어가서 편히 누워 자거라...“ 어머니의 따뜻한 손이 아들의 손목을 잡았다. 아들은 말이 없었다. 아들은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한 씨 부부는 할 말을 잊었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렀다. 그 이후로 한 씨 부부는 한숨을 쉬곤 했다. 자주 고국 이야기를 나누며 향수를 달랬다. 해가 바뀌니 고국이 더 그리워졌다. 고향을 생각하면 마음이 울컥했다. 역이민은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았다. “호사수구(狐死首丘)”란 말이 떠올랐다. 여우가 죽을 때 자신이 살던 굴이 있는 언덕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 얘기(禮記)의 글이 어쩌면 자신들을 두고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식당 문을 열기 위해 한 씨는 매일 새벽 어두울 때 일어났다. 성공적인 미국 정착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 온 자신이 지금은 고향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일을 하는 모습이 낯설게 생각되었다. 감기 한번 앓아 본 적 없을 정도로 건강했던 한 씨는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지를 못했다. 급히 응급차를 불렀다. 혈액검사와 단층촬영 결과를 살펴본 후 의사는 한 씨에게 이미 두 차례의 뇌출혈이 있었다는 것과 폐에 물이 차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입원 후 며칠이 지났다. 의사가 입원실로 들어와 부인에게 말했다. “남편에게서 폐암이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에서는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의사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한국에서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떠나던 날이 엊그제 같았다. 돌이켜 보면 몸은 미국으로 왔지만 마음은 늘 고국에 머물러 있었다. 지금이라도 고국으로 돌아가면 남편이 툭툭 털고 자리에서 금방 일어날 것만 같았다. 한국을 떠날 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미국으로의 여행이 삶의 마지막 여정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미국은 최종 정착지가 아니었다. 해가 저물어 갈 때 고국 쪽으로 기울어지는 석양빛을 자주 쳐다보곤 했었다. 고향은 언제나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은 한 씨 부부에게 큰 행복이었다. 언제 돌아가도 반갑게 맞이해 주는 어머니의 품 같은 고국이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행복했다. 고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삶의 마지막 여정이 되기를 바랐다.

<전병두 서북미수필가협회 회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