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9년 한 척의 네덜란드 배가 20명의 흑인 노예를 태우고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 들어왔다. 이들이 미국 노예의 시조다. 미 ‘건국의 아버지들’도 노예 제도가 자유와 평등을 모든 인간의 기본권으로 선포한 ‘독립 선언서’ 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폐지를 입에 담지 못했다.
오히려 연방 헌법에 ‘3/5 조항’과 ‘도주 노예 조항’을 넣어 노예제를 공식 인정했다. ‘3/5 조항’이란 인구 비례로 뽑는 선거에서 흑인 노예 숫자를 백인의 3/5으로 계산한다는 조항으로 이렇게 하면 흑인 노예를 둔 남부 주의 정치적 영향력은 커지게 된다. ‘도주 노예 조항’이란 흑인 노예가 노예제를 인정하지 않는 주로 도주하더라도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시한 것으로 노예 사냥꾼이 도망간 노예를 잡아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됐다.
낙관론자들은 시간이 가면 노예제는 소멸될 것으로 봤으나 18세기말 ‘카튼 진’이 발명되면서 얘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카튼 진’이란 ‘목화 엔진’이란 뜻으로 엄청난 시간이 걸리던 목화 씨와 섬유 분리 작업을 간단히 해낼 수 있는 기계를 말한다. 이로 인해 미 남부 지역에 대대적인 목화 재배가 가능해졌으며 흑인 노예의 중요성은 날로 커졌다.
당시 이해관계가 직접 걸린 노예 농장주 못지 않게 적극 노예제를 옹호한 것이 바로 남부 교회와 기독교 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은 창세기 9장 18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한 노아가 자신의 나체를 본 함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그 자식 가나안이 형제들을 섬기는 종이 될 것이라고 말한 부분을 근거로 노예제는 신이 정한 제도라고 강변했다. 노아의 나체를 본 것이 왜 그다지도 큰 죄이며 왜 함이 아니라 그 자식이 저주를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지만 함의 후손을 흑인으로 둔갑시킨 뒤 노예로 삼는 것을 정당화했다. 이들은 또 에베소서 6장 5절 “종들아, 그리스도에게 하듯 온 마음을 바쳐 … 두려워 떨며 주인을 섬기라” 구절을 거론하며 모든 노예는 충실히 주인에 복종할 것을 종용했다.
이들은 남북전쟁에서 진 후에도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한 적이 없다. 오히려 이를 하나님이 자신들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내린 시련으로 이해하고 백인의 우월성과 소수계와 이민자에 대한 증오와 경멸을 더 단단히 했다.
그 후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이들은 아직도 건재하며 ‘백인 기독교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세력 확장을 꿈꾸고 있다. 이름은 ‘민족주의’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인종주의’에 가깝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백인의, 백인에 의한, 백인을 위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중 대표적 인물의 하나인 앤드루 토바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정부 권력을 되찾아 와야 하며 기독교 민족주의만이 미국을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백인의 인종 학살과 교체를 막기 위해 백인은 오직 백인과 결혼해 백인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 백인 기독교 인종주의자들이 구세주로 떠받들고 있는 인물이 바로 루저 도널드다. 선거 부정과 포르노 배우와의 성관계 후 입막음을 위한 장부 조작 혐의 등으로 기소되고 성추행 민사 소송 패소, 허위 재산 부풀리기 혐의 피소, 상습 성추행 자백, 2번의 탄핵 등 추한 면면이 아무리 드러나도 그들 보기에 이는 구세주에 대한 박해일뿐이다.
상식이 있는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들 태도에서 건국 이래 200년 동안 미국을 지배해왔지만 이제 그 주도적 자리를 빼앗기게 된 집단의 절박함이 엿보인다. 인구 조사국 통계에 따르면 향후 20년간 백인 인구는 감소하고 소수계 숫자는 늘면서 2045년이 되면 백인은 전체 인구의 49.7%로 줄어든다. 소수계가 다수가 되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기독교인의 수도 꾸준히 줄고 있다. 1976년 미 인구의 91%를 차지했던 기독교도 수는 2022년 64%로 떨어졌으며 퓨 연구소에 따르면 2070년이 되면 35%에서 46%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위기에 놓인 백인 기독교도들 눈에는 멕시코 이민자들을 “강간범”이라 부르며 국경에 장벽을 쌓고 백인 우월주의자를 감싸는가 하면 미국 제일주의를 부르짖는 루저 도널드야말로 구세주로 보일 수 있다. 한 때 농장주들이 노예에게 그랬듯 루저 도널드가 밀입국자들을 강제 분리시켜 이산 가족을 만들고 과거 노예제를 유지했던 남부주들이 그의 지지 기반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이는 헛된 기대일뿐이다. 루저 도널드 아니라 그 할애비라도 결국 역사의 거대한 물결은 거스르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허접한 인물을 구세주로 모셨다는 사실이 백인 기독교 인종주의의 몰락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
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