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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들의 생명은 중요하다

2023-10-18 (수) 남상욱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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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 사무엘서에 따르면 하나님을 따르며 사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 사무엘에게 하나님께 자신들을 통치할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한다. 당시 주변 ‘이방 나라’들이 강력한 왕정 체제로 군사적 위협에 맞대응하기 위함이다.

왕이라는 또 다른 신을 의지하겠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에 실망한 하나님은 결국 왕을 세워달라는 요구를 들어준다. 하지만 하나님은 왕이 갖게 될 막강한 권력의 폐해를 경고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대신 싸워 줄 군사력과 왕권 유지를 위해 현물 세금을 부담해야 하고 왕의 명령에 복종하다 보면 결국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의 종이 되어 버릴 것이라는 게 경고의 내용이다.


이 이야기의 본질은 한 나라의 정권이 나라의 자원을 ‘정의와 공의’라는 보편적 가치의 실현에 쓰기보다는 체제 유지를 위해 오남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지며 때론 정권 유지 차원의 전쟁으로 생존 위기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다.

기독교적 관점의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이야기지만 그 본질 만큼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듯하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가 지난 7일 이스라엘을 전격 공습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1048년 이스라엘의 건국과 함께 시작된 오래된 정치적, 종교적 갈등의 역사를 갖고 있다.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자치구로 1967년 이스라엘이 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유대인들을 이주시키면서 탄생했다. 이후 2005년 중동 평화 협정에 따라 이스라엘은 자국민을 철수시켰다. 반이스라엘 과격 단체 하마스가 통치하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경제 구역에 장벽을 설치하고 고립 정책을 펴왔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고립된 상태로 극도의 경제난을 겪고 있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번 갈등의 원인에 대해선 의견이 많지만 지상전으로 확대된 배경 중 하나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 극우 연정을 꼽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지난해 12월 극우세력과 연합해 재집권한 네타냐후 총리는 유대인 정착촌 확대, 서안지구 내 동예루살렘 지배권 강화 시도, 이슬람 성전에서 유대교인 기도 용인과 같은 강경 정책들로 팔레스타인과의 충돌 가능성을 키워 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국제법 위반이라며 유대인 정착촌 건설의 중단을 요구했지만 네타냐후 정부는 강행했다. 여기에 사법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개혁 법안을 추진해 국내 반발을 초래하는 정치 실패가 더해지면서 하마스와 전면전까지 언급하며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려 하고 있다.

하마스는 1987년 12월 창설된 반이스라엘 무장 단체로, 이스라엘을 향한 무장 투쟁과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주장하는 과격파에 속한다. 2006년 총선에서 대승한 하마스는 2007년부터 팔레스타인 자치구 가자지구를 독재 지배하고 있다. ‘창살없는 감옥’으로 불리는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을 구실로 이스라엘을 타도의 대상인 대적으로 만들며 자신들의 정치적 존재감을 유지하기 위해 테러를 정당화하고 있다.

정치적 이해에 비롯된 이번 분쟁의 피해는 오롯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민중의 몫이다. . 7일 하마스의 5,000발 로켓 발사로 무고한 시민 1,000여명이 희생됐고 이스라엘의 보복 폭격으로 가자지구 주민의 희생도 컸다. 분쟁이 시작된 지 10일 넘은 지금 4,000여명의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했고 이들 대부분이 아동과 여성, 노인들이다.

미국 국민들의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슬람을 각각 지지하는 시위들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민족적, 이념적 대결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시카고에서 70대 집주인이 세들어 살던 팔레스타인 출신 6살 아이를 흉기로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참극이 없다.

정권 유지를 위한 전쟁으로 평범한 일상을 사는 민중들이 희생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더욱이 지지를 명분으로 인종적, 이념적으로 갈라치기를 하고 배제와 혐오로 상대방을 타도하려는 행위 역시 규탄 받아야 한다. 우리가 비판하고 반대하고 대항해야 할 세력은 이스라엘과 이슬람의 민중들이 아니라 권력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데 사용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정치 세력이다.

<남상욱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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