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추락의 분석’(Anatomy of a Fall) ★★★★ (5개 만점)
▶ 재판 과정을 통해 통렬하게 분석, 결혼의 파탄·작가의 심리 등 분석…소통 부재로 부부관계 종말 다뤄
사무엘의 추락사를 둘러싸고 사무엘과 그의 아내 산드라의 길등에 엮인 관계가 분석된다.
눈 속에 떨어져 죽은 남자는 사고로 떨어져 죽었는가 아니면 자살 했는가 그렇지도 않으면 누군가 그를 밀어서 떨어져 죽은 것인가. 이 영화는 겉으로는 추락사한 남자의 죽음의 원인을 캐내는 미스터리 수사물의 형식을 취했지만 실제로는 죽은 남자와 그의 아내와의 관계를 가차 없이 분석하고 있다.
상영시간 2시간 35분짜리의 프랑스 영화로 영화의 절반 정도는 영어 대사인데 올 해 칸영화제서 대상인 황금 종려 상을 탔다. 압박감을 느낄 정도로 긴장감이 감도는 매우 지적인 작품인데 지나치게 냉정한 것이 결점.
남편 살해 혐의로 기소된 아내의 법정 드라마요 재판 과정을 통해 통렬하게 분석되는 결혼의 파탄과 작가의 심리 및 감정 분석을 다룬 성격 드라마이자 죽음(살인 또는 자살)의 원인을 파헤친 깊이 있는 작품으로 궁극적으로는 상호 소통의 결핍과 불가능으로 인해 닥친 부부관계의 종말을 다루고 있다.
프랑스 알프스의 외딴 곳의 채 완공되지 않은 3층짜리 집에 사는 독일 태생의 여류 작가 산드라(산드라 퓔러)가 인터뷰를 하는데 다락에서 일하던 산드라의 남편 사무엘(사무엘 타이스)이 집이 무너져 내릴 정도로 크게 음악을 튼다. 여기서부터 산드라와 사무엘의 관계가 순탄치 않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사무엘도 작가인데 최근에 자기가 집필하려고 간직했던 아이디어를 포기, 좌절감에 빠져 있다. 이와 함께 산드라가 자기보다 더 유명한 작가인 것도 사무엘의 좌절감을 한층 더 두껍게 만들어 놓고 있다.
한편 산드라는 조국을 떠나 외딴 곳에 살면서 고독에 시달리는데 그는 자신의 소설 내용을 자기 삶의 경험으로부터 다분히 원용하고 있다. 이런 처지이니 산드라와 사무엘의 관계가 원만할 리가 없다. 게다가 둘의 11세 난 아들 다니엘(밀로 마차도 그라네)이 어릴 때 사고로 눈을 다쳐 맹인이나 다름없이 앞을 못 보는 것도 두 부부의 관계를 갈등의 지경으로 몰고 간 원인 중 하나.
어느 겨울 날 다니엘이 애견 스눕과 함께 긴 산책서 돌아오면서 눈밭에 아버지가 피를 흘린 채 누워있는 것을 발견한다. 경찰이 출동해 머리에 피를 흘린채 추락사한 사무엘의 죽음의 원인을 수사하면서 사고사나 자살보다는 살인 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믿는다. 유력한 용의자는 산드라. 그러나 산드라는 자기는 남편의 추락사가 일어났을 때 자고 있었다고 자신의 무죄를 강력히 주장한다.
그러나 산드라는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면서 산드라와 사무엘의 달갑지 못한 관계가 샅샅이 들어난다. 검찰 측은 산드라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것을 들어 사무엘의 추락사와 유사한 내용을 쓴 책을 인용하면서 산드라를 몰아붙인다. 이와 함께 사무엘이 작품을 위해 자기와 산드라의 대화를 아내 몰래 녹음한 내용 중에서 사무엘이 사망하기 전 날 산드라와 대판 싸움을 벌인 부분을 공개한다. 이 과정을 통해 산드라와 사무엘의 숨어 있던 묵은 갈등과 비밀과 불미스러운 일들과 부정 등이 샅샅이 밝혀진다.
한편 다니엘은 어머니의 재판을 지켜보면서 처음에는 어머니의 무죄를 믿다가 점차 어느 것이 진실인지 몰라 혼란에 빠진다. 재판은 끝나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과연 재판의 결과를 믿어야 할지 아니면 의문해야 할지를 묻게 만들었다. 뛰어난 것은 독일 배우 퓔러의 연기다. 복잡한 내면을 지닌 여인의 연기를 진지하고 예리하고 또 깊이 있게 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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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