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대만에게 대만국방부가 운영하는 실험실에서 생물무기를 제조할 것을 요청했다’- 지난 7월 대만의 주요 일간지 연합보에 실린 기사다.
연합보는 미국과 대만 정부의 비밀회담을 통해 이 같은 요청이 이루어진 것으로 밝히면서 입수한 그 비밀회담의 기록문건을 공개 했다. 그 누설됐다는 기록문건의 용어사용이나 서식이 그런데 대만정부 스타일이 아니다. 중국본토에서 사용되는 용어에, 서식이다.
중국공산당의 역정보 작전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고 할까. 그게 연합보의 기사내용이다. 그런데도 상관없다. 그 보도는 뒤이어 이런 황당한 주장으로 번져나갔다. ‘대만정부는 15만 명의 대만인 혈액을 채취해 미국으로 보내 중국인을 죽이는 바이러스 배양에 사용되고 있다.’
2024년 1월 13일인가. 차기 대만 정부총통 선거와 제11대 대만 입법위원 선거가 동시에 치러지는 날이. 양안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동북아시아의 안보 지형과 앞으로의 미중 패권 경쟁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 이번의 대만 총통선거다.
그 선거를 불과 3개월 앞둔 시점에서 대만에서 거의 매일 펼쳐지고 있는 것이 베이징과 대만 내 친중세력의 역정보작전이다. ‘대만의 적은 중국이 아닌 미국’이라는 내용의 괴담이 그럴듯하게 포장돼 줄곧 유포되고 있는 것으로 이코노미스트지는 보도하고 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괴담이나 동영상을 대만의 언론이 보도한다. 그러면 야당 의원들이 토크 쇼 등에 출연해 그 내용을 확대재생산한다. 온갖 인플루언서들도 그 작업에 참여하면서 괴담은 사방팔방 번져나간다. 이렇게 되기까지 불과 반나절 밖에 안 걸린다는 것이 대만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역정보 작전만이 아니다. 이른바 ‘초한전(한계를 초월하는 전쟁이란 의미)’을 통해 중국공산당은 대만선거에 총체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여론전, 심리전, 미디어전, 인지전, 정치공작전, 해외통전, 사이버전, 경제전, 문화전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 것이 초한전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무조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무너뜨리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시도 때도 없고 법과 규칙, 양심도 따지지 않고 전개하는 일종의 기만전쟁이다.
중국공산당이 전천후로 벌이고 있는 초한전의 실상은 페이스북과 인스타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메타의 폭로로 그 일단이 드러나기도 했다. 메타는 지난 8월말 중국 정부가 배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선동 계정 7,700여개를 삭제했다고 밝혔다.
전투기와 전함을 매일같이 동원해 상륙훈련을 실시한다. 툭하면 대만산 과일 등 금수조치를 취한다. 이처럼 거짓 뉴스 유포에 군사, 경제적 위협을 통해 ‘전쟁과 평화’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프레임을 짜 심리적 압박을 가한다.
그 뿐이 아니다. 아예 대만의 여론조사 회사를 매수, 대놓고 여론을 조작해 발표한다. 그런데다가 수시로 야당 의원들, 경제인 등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여 친중여론을 조장한다.
이 역정보 작전에 사람들은 넘어갈까. 20% 미만(주로 무당파 유권자)이 그 가짜 뉴스를 믿는다는 것이 대만관계 당국의 발표다. 표로 환산하면 7% 정도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 박빙의 선거전에서는 승패를 좌우 할 수도 있다는 거다.
비정상이 정상이 됐다고 할까. 시도 때도 없이 전개되는 가짜 뉴스 살포에, 공공연한 여론조작, 이런 것이 일상화 되어 있는 것이 선거 3개월을 앞둔 시점의 대만의 현실이다.
이 대만의 현실이 그렇다. 어딘가 한국의 선거정국을 그대로 빼닮은 것처럼 보인다. ‘생태탕에, 페라가모 괴담’공방으로 지고 샌 서울시장 보궐선거, 대장동 사건의 몸통은 윤석열이라는 취지의 ‘윤석열 커피‘ 가짜 뉴스를 날조해 내자 좌파언론들이 이를 빛의 속도로 전파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메시지로 유포한 지난해 대선 전야의 풍경과 너무 흡사하다.
이 대만의 현실은 동시에 ‘차이나 게이트 의혹’ 기억을 새삼 소환시키고 있다. 좌파 성향의 이용자가 많은 국내 포털 ‘다음’의 응원페이지에 아시안게임 한국과 중국 축구 경기에 중국을 응원한 댓글이 무려 91%를 차지한 괴이한 해프닝이 때마침 발생한 것과 관련해. 뭐랄까, 중국댓글 부대의 지문이 흠뻑 묻어나고 있다고 할까.
그리고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한민국의 22대 총선이 어떤 분위기에서 치러질지 그 광경을 어느 정도 가늠케 하고 있다.
다름에서가 아니다. 동아시아 미국동맹 시스템의 최전방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은 중국공산당의 패권확장에 ‘지전략적(geo-strategic) 1순위’로 한국의 사이버 담론장 등은 이미 중국과 북한의 인지전의 장이 된 것으로 판단된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잇달아서다.
중국공산당은 최대 3,000만 이상의 사이버 댓글공작 부대(우마오딩)를 운영하고 있고 한국을 타깃으로는 조선족을 중심으로 최소 수십만에서 수백만을 댓글 공격에 동원하고 있다.
한미동맹 강화를 통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등 윤석열 정부는 친중 문재인 정부와 전혀 다른 결을 보이고 있다. 당연히 중국공산당과 북한의 입장에서는 타도 1순위다.
그 윤석열 정부 ‘조기 레임덕’을 유도하기 위해 우마오당 동원을 통한 여론조작에, 괴담살포 등 내년 총선에 중국 공산당과 북한의 대대적 개입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제 6개월로 다가온 그날. 앞으로 어떤 중상모략이, 또 일찍이 상상도 못했던 괴담이 언론과 유튜브를 도배할까. 생각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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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