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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 도널드의 뼈아픈 패배

2023-10-03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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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 도널드 이름이 알려진 것은 1982년 포브스 억만장자 명단에 오르면서부터다. 그러나 80년대 투자 실패로 그의 이름은 1990년부터 1995년까지는 여기서 빠졌다. 그 후 2015년 그가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면서 연방 선거 위원회(FEC)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그의 재산은 1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의 실제 재산은 이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21년 포브스가 추산한 그의 재산은 24억 달러로 세계 1,229번째나 이 또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언론인 조너던 그린버그에 따르면 1984년 루저 도널드는 아버지 재산의 90%를 물려 받았다고 허위 정보를 흘려 억만장자 랭킹을 올리려 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루저 도널드는 아버지한테 100만 달러를 빌려 사업을 시작했고 이자까지 쳐 갚았다고 말해 왔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는 8살 때 이미 100만 달러 이상을 받았고 6,000만 달러 이상을 빌려 갚지 않았다.


‘투자의 귀재’라는 그의 주장과 달리 그가 연방 국세청에 제출한 세금 보고서에 따르면 1985년부터 1994년까지 그는 총 11억7,000만 달러의 투자 손실을 기록했다. 2020년 뉴욕타임스가 입수한 루저 도널드의 20년간 세금 보고서를 보면 그의 수입원은 TV 쇼 ‘어프렌티스’ 출연료와 다른 사람이 경영하는 회사 소수 지분에 대한 배당이 대부분이고 자신이 경영권을 쥔 회사는 거의 손실을 기록했다. 그가 이 기간 세금을 전혀 안 내거나 750달러 이하로 낸 것은 이 때문이다.

그가 재산을 축적해 온 비결은 간단하다. 자기 회사가 가지고 있는 부동산의 가격을 시가보다 몇 배로 부풀려 은행과 투자가로부터 거액의 돈을 뜯어낸다. 그리고 이 돈을 자기에게 경영 보수 등의 명목으로 지급한 후 회사는 파산 신청을 해 빚을 턴다. 회사는 망하고 은행과 투자가들은 손실을 보지만 루저 도널드의 재산은 늘어난다.

루저 도널드는 이런 파산 + 돈뜯기 사기 행각을 1991년부터 2009년까지 6번이나 되풀이했다. 도이치 방크를 제외한 세계 주요 은행들이 루저 도널드와의 관계를 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도이치 방크마저 2021년 1월 6일 의사당 난입 사건 이후에는 더 이상 돈을 빌려 주지 않고 있다. 그와 관련된 민사 소송이 4,000건이 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쯤 되면 루저 도널드의 일생이 사기 사건으로 점철돼 있다는 말은 부적절하다. 그의 인생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사기 사건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 뉴욕 법원은 루저 도널드의 인생이 한편의 사기극임을 공식 인정했다. 루저 도널드가 재산의 가치를 부풀려 사기 행각을 벌여왔다며 레티시아 제임스 뉴욕 검찰총장이 제기한 민사 소송을 심리 중인 아더 엔고론 판사는 이것이 사실이라고 판시했다.

이번 결정은 최종 판결은 아니지만 양자 간 다툼의 핵심 사항인 사기 행위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와 관련, 뉴욕주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에서 루저 도널드의 완패로 평가된다. 제임스 검찰총장은 루저 도널드가 자기 재산의 가치를 22억 달러나 과대 포장했다며 2억5,000만 달러의 벌금과 함께 루저 도널드의 뉴욕 주내 영업 허가 박탈을 신청했다.

벌금 규모는 추후 결정될 예정이지만 엔고론 판사는 영업 허가 박탈을 승인함으로써 루저 도널드 영업에 치명타를 가했다. 아직 상급 법원 재판이 남아 있지만 이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맨해튼에 있는 40 월가의 핵심 건물과 트럼프 타워, 웨스트체스터 카운티에 있는 자택과 골프 클럽에 대한 통제권이 날아갈 수 있다.

엔고론 판사는 판결 당일 루저 도널드와 그 자식들이 “렌트 통제를 받는 아파트와 받지 않는 아파트, 용도 제한이 있는 땅과 없는 땅의 가치를 똑같이 평가했다”며 “이건 환상의 세계지 현실 세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루저 도널드 측 변호사는 부동산의 가치는 팔기 전까지는 주관적이라며 높이 평가했다고 반드시 사기는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엔고론 판사는 “트럼프 타워내 아파트 면적이 실제로는 1만1,000평방 피트인데 이를 3만 평방 피트로 계산했다”며 “건물 면적의 수치는 주관적일 수 없고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 면적을 부동산 개발업자가 이 정도로 부풀렸다는 것은 사기로밖에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로써 2018년 중간 선거, 2020년 대선과 2022년 중간 선거에서 지고 진 캐롤 성추행 민사 사건에서 패소한 루저 도널드는 뉴욕 주와의 사기 민사 소송에서 또 다시 패배를 맛보게 됐다. ‘루저 도널드’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앞으로도 무궁한 패배가 이어지길 기원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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