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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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교통사고

2023-09-30 (토) 김지나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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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처럼 퇴근 준비를 하고 있던 참에 아들한테 전화가 왔다. 첫마디는 이랬다. “나는 살았어” 한국말이 서툴러 더욱 놀랐지만 17살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운전을 시작한 지 한 6개월 정도 되었고, 12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일주일 되었고, 인턴을 시작한 지는 이제 4일 차로 하이웨이를 타야해서 운전이 힘들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던 참에 교통사고가 났다.

교차로에서 좌회전하려는 아들의 차를 반대편에서 직진하던 차가 아들 차의 조수석 뒤 옆구리를 받은 후 아들 차 옆에 있던 차의 운전석을 2차로 받았다. 아들 차를 박은 상대방 차는 정면이 박살이 나면서 모든 에어백이 터지면서 다른 차의 운전석 문을 부딪치고 있는 모습으로 정지화면처럼 거리에 서 있었다.

그림으로만 보면 어마어마한 대형 교통사고다. 이런 끔찍한 광경의 한가운데 한쪽에서 웃음소리가 왁자하니 들렸다. 이 정도 교통사고라면 모두가 심각하고 화난 표정을 지으며 너나 할 것 없이 고성으로 자신의 행위에 정당함을 주장하려는 목소리로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으로 전개되는 것이 보통일 텐데 그들은 큰 사고에 비해 서로 다치지 않아서 기쁨의 대화를 하는 듯 보였다. 그들 중 한 명이 우리에게 오더니 아들은 괜찮냐며 안부를 물어보았고 나 또한 그에게 괜찮냐며 안부를 물었다.


미국에 오고 20년 만에 처음 당하는 교통사고였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통상적인 개념이 있는 한국의 교통사고는 경미한 접촉사고라도 뒤차가 내 차를 받았다면 반드시 뒤 목을 잡고 천천히 나와야 한다. 일단 사고가 나면 그 자리에서 큰소리를 쳐야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고 합의하는 과정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상대방의 운전 결점을 찾기에 안간힘을 쓰며 고성과 함께 급기야 몸싸움을 하기도 한다.

지금이야 차 안에 있는 블랙박스가 보편화되어 예전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큰소리치고 보는 옛날 습성은 그대로인 듯하다. 미국 같으면 경찰의 막강 파워를 생각해서라도 이런 일은 없을 텐데 한국은 마치 경찰이 현장에서 심판의 역할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나도 한국 사람이라 경찰을 보자마자 신경질적으로 대하면서 굳은 표정이나 팔짱 낀 자세만으로도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보이는 게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축제 분위기가 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이렇게 큰 사고를 당했는데 굳이 웃고 떠들 일인가? 경찰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증언해야 할 거 같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그래서 아들이 경찰에게 곧이곧대로 조용히 이야기할 때 내심 속상해하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미국인들의 두 얼굴은 심히 다르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웃고 있는 친절한 미국인의 얼굴 뒤에는 어떠한 얼굴로 나쁜 일이 꾸며질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국민성으로 볼 때 한국인과는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일이 나면 그 즉시 대면하고 해결하려는 것이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 오히려 가산점을 주는 한국인의 정서와는 다르게 미국인은 뒤에서는 욕을 하든 뭐 하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는 웃는 얼굴로 대하는 것이 좋은 매너라고 생각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인은 다혈질이지만 뒤끝이 없는 반면, 미국인은 앞과 뒤가 다른 두 얼굴로 조용하지만 뒤끝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아마 이번 같은 경우에도 앞에서는 웃으며 말했지만, 뒤돌자마자 보험회사에 클레임을 걸어 사건을 처리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되짚어보면 슬프고 아픈 사고 현장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큰 사고지만 모두가 다치지 않고 무사함에 감사하고 더 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웃을 수 있는 미국인들의 호기로운 모습을 보았다. 이런 미국인의 호기는 대륙적 기질에서만이 나올 수 있는 대국의 단면이라 해석될 것이다. 액땜을 크게 해준 아들 덕에 남은 해는 무사히 넘어가길 바래본다.

<김지나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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