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 귀국 하기로 했어요. 이달 28일 떠나요.’ 성가대 연습이 끝나자 한 자매가 툭 던진 말 한마디. 일순간 조용. 모든 시선이 그 자매한테 쏠렸다. 오래 전부터 준비 했던 일이지만 이제 마음을 굳혔다며 조용히 웃는다.
콜로라도로 이사를 오며 성당에서 만났던 자매이니 20년 넘게 같은 성당을 다녔고, 같이 성가대와 성모회를 했다. 갑작스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은 완전히 트럼프 (Trump) 아저씨 때문이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취임식을 한 1월 20일 이후, 미국의 상황은 급변했다. 세계를 향해 선전포고처럼 쏟아내는 정책의 변화로 미국내 정서도 급변한다.
그 중 하나 ‘불법체류자 색출’. 한국 이민 사회에는 신분이 불확실하게 거주하는 이들이 꽤 있다. 미국내 한국 언론에 따르면 제일 적게 잡아도11만정도. 생각보다 많이, 신분이 불확실한 한인들이 거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것 같다. 그 자매 가정도 그렇다는 것을 귀동냥으로 알고는 있었다. 상황을 물어볼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어서 남의 가정사 정도로 알았다.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상황을 지닌 채로 20년 이상을 이 동네에서 살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무언가 말 못한 사정이 있었을꺼고, 사람 사는 일 중의 어떤 모습일 수도 있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한국 신문에는 어디 어디가 급습을 당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들이 하나 둘 올라 왔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 주일마다 얼굴을 보던 지인이 영구 귀국을 결정했다고 하니, 그 싸한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신분의 불확실성으로 노심초사하며 불안했다는 고백. 트럼프의 으름장에 다시 돌아 가기로 했단다. 만약 검거가 되면 그 복잡한 과정을 거쳐 ‘추방’이라는 이름을 달고 떠나야 하는것도 두려운 일일 수 있다.
나의 이민 생활도 40년을 넘고 있다. 미국 시민권을 받은지도 30년. 한국 보다 미국생활이 훨씬 길어진 지금. 요즈음의 상황을 보면 이민자로 산다는 것이 무슨 범법 행위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시민권이 있는 나도 이렇게 불안하고 염려가 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에 처한 이들은 얼마나 더 불안할까.
자국민의 이익을 위한 정책들이라고 트럼프는 강변하지만 미국은 원래 이민자들이 만든 국가 아니던가? 역사 속에서 멜팅팟이 되고 셀러드 볼이 되어, 각자의 모습대로 살면서 그 개성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었던 아메리카. 그 안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고, 잘 살았고, 잘 살고 있다고 자부 했는데, 그 믿음마져 흔들리는 시간이다.
선거용이라고 치부했던 정책들이 취임 한달 만에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는 현실을 마주한다. 기우라고 여겼던 것이 바로 옆에 있는 지인에게는 현실로 나타나는 오늘이 두렵다. 이민자의 모습이 개척 정신이 아니라 빌붙어 사는 모습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누가 뭐라해도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살았고, 그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불안하고, 남의 시선이 신경이 쓰이고, 지나가는 소리들에 예민한 요즈음. 이 상황들은 언제까지 내 곁을 서성일까?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이라는 화두 하나 잡고, 애써 평온한 척. 오늘의 씁쓸한 분위기는 나의 쓸데 없는 기우이기만을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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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은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