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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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인류와 24세기의 인류

2023-09-26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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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수렵 채취를 위주로 하던 선사 시대에서 농업과 목축을 하던 역사 시대로 발전했으며 이 과정에서 인구는 늘어나고 생활 수준은 향상됐다는 게 통설이었다. 그러나 이를 수용하지 않는 학자들도 있다. 인구가 늘어난 것은 맞지만 생활 수준이 향상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중 한 명이 ‘총, 균, 쇠’의 저자 자렛 다이아몬드다. 그에 따르면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부시맨들은 먹을 것을 구하는데 주 평균 최대 19시간을 사용하며 하루 2100칼로리 이상을 섭취한다. 인근 지역 농부보다 일하는 시간은 적으면서 칼로리 섭취량은 더 많았다.

또 그리스와 터키 일대 유골 조사 결과 수렵 채취 시대에 살던 남성 평균 신장이 5피트 9인치에 달했던 반면 농사를 짓기 시작한 후 발견된 남성 유골 신장은 5피트 3인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리노이와 오하이오 강변에서 발견된 유골들도 농사 보급 후에는 영양 부족을 보여주는 치아의 에나멜 결핍은 50%, 철분 부족으로 인한 빈혈은 4배, 전염병 감염으로 인한 뼈 손상은 3배 늘어났다.


농사를 지어 수확량은 늘었고 그로 인해 인구는 증가했을지 모르지만 뼈 빠지게 일하느라 몸은 상했고 한 곳에 여럿이 모여 오래 살다 보니 쌓이는 쓰레기로 인한 전염병 창궐 등으로 고생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수렵 채취 생활 방식은 수시로 이동하며 살았기 때문에 전염병 위협도 적고 섭취 음식물 종류도 다양해 건강 증진에 도움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농부들은 ‘수’를 무기로 점차 영토를 넓혀 갔으며 그 결과 수렵 채취는 아마존 등 오지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생존 방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유엔 자료에 따르면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19만년 전부터 농업이 시작된 1만년 전까지 세계 인구는 서서히 늘어 500만명을 기록한 후 농업이 전 세계로 퍼진 기원 1년에는 3억으로 증가했다. 그 후 상업 혁명이 시작된 17세기 중반 5억으로 늘었다 산업 혁명이 시작된 18세기 중반에는 8억, 산업화가 세계적으로 확대된 20세기 중반에는 25억, 그리고 2023년 현재는 80억을 돌파했다.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는데 유엔에 따르면 2100년 104억으로 피크를 찍은 후 점차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로마 클럽 보고서는 2050년 86억으로 정점을 기록한 후 계속 감소, 2100년에는 이보다 20억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뉴욕타임스에 충격적인 기사가 실렸다. 텍사스대 인구 연구소의 딘 스피어스에 따르면 세계 인구는 2085년 100억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꾸준히 감소할 것이며 현재 미국 출산율이 유지될 경우 300년 후 20억 이하로 떨어질 전망이다. 이 트렌드가 계속되면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원전 1000년 세계 인구인 1억 이하로 떨어진 후에야 안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주요 선진국의 출산율은 모두 인구 유지에 필요한 여성 1명당 2.1명에 크게 못미친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1.66명, 유럽 1.5명, 동아시아 1.2명이고 라틴 아메리카 1.9명, 심지어 인구 최다국 인도마저 2명 이하로 떨어졌다. 금세기말까지 인구가 늘 것이 예상되는 곳은 사하라 남부 국가뿐이지만 이들 나라들도 교육 수준과 소득이 느는 것에 비례해 출산율 감소가 예상된다.

출산율과 함께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진행되면 선진 각국은 심각한 재정 위기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부양받아야 할 노인은 늘어나는데 부양할 젊은이는 줄기 때문이다. 평균 연령이 높아지면 사회는 활기를 잃고 경제 규모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구 전체로는 긍정적 영향을 가져올 수도 있다. 지금 지구가 당면한 자원 고갈과 공해, 지구 온난화 등등이 모두 근본 원인을 찾자면 인구가 너무 많아서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산업 혁명 이후 지난 200여년간의 급속한 인구 팽창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돌발 상황이었다. 농경 사회에는 자식이 재산이자 노후 버팀목이었고 유아 사망율이 높아 많이 낳는 것이 장땡이었다. 그러던 것이 산업화로 사회 구조가 바뀌고 의학의 발달로 생존율이 높아지면서 인구가 급증했다. 그러나 이제는 교육비 등 양육비는 늘어나는데 노후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존재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아이를 점차 낳지 않게 된 것이다.

수렵 사회와 농경 사회 비교에서 알 수 있듯이 인구가 많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최근 선진 각국의 출산율 감소 현상은 당분간 고통을 수반하겠지만 비정상이 정상을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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