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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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이야기

2023-09-23 (토) 나효신 /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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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4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정원’에 가봤다. 유럽의 대규모 정원에 가서 산책을 하며,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정원사가 계획하여 만든 그곳이 우리 식구들이 우리 집의 ‘정원’이라고 부르던 ‘마당’과는 여러모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유럽의 정원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시골에 있는 집에서 내다보는 들판과 아름다운 산은 매우 자연스러운, 사람이 가꾼 정원 이상의 정원이라는 생각도 해봤다.

여행을 하다보면 인간이 만든 건축물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시가 있는가 하면, 높은 아파트 건물이 시멘트도시를 이루고 있는 곳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사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높은 건물을 그렇게 많이 볼 수는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지진이 종종 일어나는 곳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집에는 정원 아닌 조그만 뒷마당이 있어 꽃씨를 뿌리고 콩씨도 심으며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12월을 분주하게 보내며 어, 어, 하다보면 어느새 새해! 아, 벌써 1월이네, 하며 창밖을 내다보면, 이미 목련꽃이 피어 있다! 겨울에 쌀쌀하지만 너무 춥지는 않고, 여름에도 쌀쌀하지만 너무 덥지는 않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1년 내내 꽃이 피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약 8,000 종류의 식물이 자라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식물원(San Francisco Botanical Garden)은 도시의 중앙에 있다. 이 매우 넓은 땅에 백화점이나 아파트 대신 울타리를 치고 식물을 가꾸고 있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무료로 입장하고, 시민이 아닌 방문자들은 입장료를 지불한다.


이 식물원은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 자라는 식물은 이곳에, 그리고 저곳에는 다른 어느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 이런 식으로 분류가 되어 있다. 큰 나무에 아름다운 꽃들이 많이 피어 있는데, 그 나무 아래에는 키가 아주 작은 다른 꽃나무가 다른 색의 꽃을 피우고 있다. 어떤 꽃들이 언제 필 것인지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그렇게 함께 가꾸지 못할 것이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지식을 갖추고 열심히 일하며 생활할 것이고,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꽃이 예뻐서 가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준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를 기쁘게 해준다는 것! 참 좋은 일이다.

꼭 내 것이 아니어도 이렇게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아름답고 넓은 정원이 가까이 있으니 참 감사하지 않은가!

<나효신 /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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