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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칼럼] 레닌주의에 치인 중국 경제

2023-09-11 (월) 조지 F. 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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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 전에 사망한 블라디미르 레닌이 21세기의 중국에서 부활해 호시절을 보내고 있다. 지난 40년 동안 중국공산당(CCP)의 최우선 목표는 경제부흥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레닌주의가 만들어낸 불치병을 앓고 있다.

현대화된 중국을 포함해 러시아와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 히틀러 시절의 독일 등지에서 레닌주의는 ‘일당 국가’라는 새로운 정부 모형을 제공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현대화와 레닌주의는 양립이 불가능하다. 현대화는 사회적 개방성과 함께 관료주의 체제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정보와 혁신에 대한 유연한 반응을 요구한다.

CCP는 레닌이 거부한 마르크스주의와 상관관계가 없다. 마르크스는 농민사회인 러시아에는 혁명의식의 물질적 전제조건인 무산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일당 국가는 마르크스의 이같은 믿음에 대한 레닌의 단호한 반응이다.


레닌은 규모는 작지만 치열한 혁명의식을 지닌 ‘전위 정당’(vanguard party)이 민중을 깨우쳐 공산주의로 이끌어가는 견인차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여기서 레닌의 일당 국가론이 나온다. 그러나 일당 국가는 치료가 불가능한 두 가지 결함을 갖고 있다. 모든 정책은 당의 지배력 유지하는 일차적인 목적에 종속된다. 또한 당이 배출한 엘리트들이 사회 곳곳에서 부와 기회를 할당해주는 위치에 서게 되는데 ‘시장 신호’(market signals)가 없는 탓에 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 배급과정에서 비효율성이 판치게 된다.

최근 베이징의 서툰 레닌주의자들은 경제 자료 배포를 금지했지만 이같은 조치는 그들의 의도와 달리 자국 경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6월의 청년 실업률이 21.3%를 기록했다고 발표한 베이징이 7월분 자료를 공개하지 않자 상황이 악화된 게 아니냐는 추측과 함께 전월의 청년실업률이 실제로는 30%선을 훌쩍 넘었을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중국은 중앙정부의 계획을 시장이 힘이 규율하는 ‘하이브리드’ 경제를 갖고 있다며 여론을 오도하는 주장을 펼친다. 이 같은 주장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정부의 개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셀 수 없는 CCP의 촉수는 아무렇지 않게 시장의 힘을 무시한다. 민간 경제분야에 대한 정부의 만연된 개입을 뜻하는 중국의 ‘산업정책’은 민간종목의 복속으로 이어진다.

레닌주의에 찌든 독재자 시진핑의 잔혹한 제로-코비드 정책 아래서는 확진자가 단 한명에 불과하더라도 수백만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도시를 통째로 봉쇄할 수 있다. 이같은 정책은 참담한 경제적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결과를 불러오는 것은 일당 국가에서 나타나는 ‘레닌주의 경제 정석’이다. 앞서 말했듯 레닌주의 경제 체제하에서는 당의 엘리트가 인적, 물질적 자원의 할당을 담당한다. 이코노미스트의 설명은 이렇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정책에 대한 가정과 기업의 두려움 탓에 약해진 소비심리는 회복되지 않는다. 당은 스스로의 권력을 제한할 힘을 갖고 있지 않다.”

이코노미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중국은 영국 전체를 주차장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양의 시멘트를 생산했다. 그러나 경제 분석가인 에드워드 루프왁은 “최소한 100여 개의 새로 지어진 공항이 이용자가 거의 없는 상태로 방치되어있고, 인구가 많은 지역의 신축 고속도로 역시 차량 통행량이 적어 한산하다”고 전했다. ‘반민영’ 조인트벤처도 사실상 CCP 벤처에 불과하다. 이들에게 자금을 대는 것은 관영은행의 해당지역 지점의 일이다. 그러나 관영은행의 매니저들은 중앙당 지부 지도자들의 대출 요구를 거부하지 못한다. 말을 잘 들으면 후한 대접을 받지만 행여 눈 밖에 나면 부패혐의 조사 등으로 곤욕을 치르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 산만큼 높게 쌓인 중국의 국내부채와 스태그네이션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중국 개발업체들의 채무 총액은 국내총생산의 16%와 맞먹는다.) 이코노미스트는 “국내 경제의 단기성장은 더 이상 CCP의 선순위 목표가 아니다”고 지적한다. 당의 최우선 목표는 ‘국가의 위대함’(national greatness)이다. 그러나 시진핑이 능력보다 충성심을 중시하기 때문에 그가 추구하는 레닌주의는 이같은 목표 달성을 어렵게 만든다.

외교관계위원회의 이안 존슨은 포린 어페어즈 기고문을 통해 “중국인들의 일상에서 정부의 개입을 가속화하는 베이징의 전략은 일종의 ‘통제 집착증으로 자기비판적 성찰이 결여된 사회에서 정치적 아이디어가 고착되고 이념이 경색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며 “바로 이것이 레닌주의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역시 포린 어페어즈에 실린 기고문에서 페터슨 국제경제연구소 회장인 아담 S. 포센은 “독재정권의 아킬레스건은 체제 내부의 자제력 결여”라고 말한다. 시진핑 치하의 중국에는 “마오 시대 이후 본 적이 없는 광범위한 공포가 퍼져있다. 중국인들은 아무런 사전 경고 없이 일시적으로 혹은 영구히 자신의 소유물이나 생계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생활한다.” 이것은 사회적 마비를 불러오는 레시피다.

레닌주의자들이 장악한 CCP는 국가의 신경조직이다. 그리고 이들이 중국을 근육마비 상태로 만들고 있다. 해외 특파원으로 활동한 루이스 피셔는 1964년에 출간한 레닌 전기에서 그의 부검에 참여했던 의료인의 말을 빌어 “레닌의 뇌혈관이 석회처럼 단단하게 굳어있었다”고 전했다. “집게에 부딪치자 마치 돌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날 만큼 석회화가 진행된 상태”였다. 중국의 현 정권은 석회처럼 굳어버린 레닌의 뇌를 지니고 있다.

조지 윌은 1974년부터 워싱턴 포스트에 칼럼을 쓰기 시작해 1977년 퓰리처 해설부문 상을 수상했다. MSNBC와 NBC 뉴스의 정기 해설가이기도 한 그는 미국 정치에 관한 여러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조지 F. 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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