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민권 운동의 상징인 워싱턴 대행진이 60주년을 맞았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내게는 꿈이 있다”고 피를 토하듯 외쳤던 바로 그 행사이다.
A. 필립 랜돌프 등 흑인 지도자들은 1963년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을 기획했다. 인종차별로 흑인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이 극심했다. 흑인들에 대한 공정한 대우와 기회 평등, 그리고 의회에 계류 중인 민권법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흑인 지도자들은 대규모 시위를 추진했다. 민권운동에 우호적이던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8월 28일, 미 전국에서 25만명이 모여들면서 링컨 메모리얼 광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마리안 앤더슨, 존 바에즈, 밥 딜란, 마할리아 잭슨 등 당대의 음악인들이 찬조 출연해 열기를 더했고, 행사 마지막에 등단한 킹 목사는 “우리가 오늘 그리고 내일 숱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내게는 꿈이 있다”는 위대한 선언으로 구름떼 같은 군중을 열광시켰다.
이후 1964년 민권법, 1965년 투표권법 통과되면서 대행진은 명실 공히 민권운동의 분수령이 되었고, 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종 정의 시위로 기록되었다.
역사는 그렇게 전환점을 맞고, 인종주의는 종식될 것 같았다. 하지만 60년이 지난 지금 킹 목사의 꿈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역사는 일직선으로 전진하지 않고, 때로 방향을 틀고 때로 멈춰 서며 뒷걸음질 치기도 한다.
28일의 대행진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워싱턴에 모였던 킹 목사의 자녀 등 민권운동가들은 참담한 심정으로 그 주말을 보냈다. 토요일인 26일 플로리다, 잭슨빌에서 백인청년이 흑인들에게 총기를 난사, 3명을 사살하는 인종증오 테러가 또 일어났다. 범행 후 목숨을 끊은 21세의 청년이 유서 겸 남긴 글에는 흑인에 대한 증오심이 깊었고, 테러에 사용된 소총에는 나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잭슨빌 흑인주민들에게 8월 말은 그러잖아도 고통스런 시기이다. 테러 바로 다음날인 27일이 ‘도끼자루 토요일’이었다. 1960년 미국 남부에서는 공공장소에서의 흑백분리를 반대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잭슨빌 흑인들 역시 백인고객만 받는 간이식당에 모여 연좌데모를 했다. 그냥 앉아만 있는 평화로운 시위였지만 백인들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200여 KKK 단원들이 몰려들어 도끼자루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잔혹하게 구타했다.
세월이 흐르고 2011년 잭슨빌 사상 첫 흑인시장이 선출되면서 역사는 전진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는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이번 참사가 뼈아프게 확인시켜 주었다.
백인우월주의와 신나치주의에 빠진 백인청년들이 유색인종/이민자들을 찾아가 총격을 가하는 테러가 근년 너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이들은 마치 임무라도 수행하는 듯 집요하다. 지난해 5월 뉴욕 버팔로의 흑인동네 수퍼마켓 총기난사는 18살의 백인청년이 장장 200마일을 운전해 가서 저지른 사건이었다. 3시간30분 걸리는 거리를 두 번이나 사전답사하면서 준비해 흑인 10명을 죽였다. 2019년 8월 텍사스, 알파소 히스패닉 지역 월마트에서 23명을 사살한 21세 백인청년은 오로지 멕시칸을 없애겠다는 일념으로 무려 650마일을 운전해 가서 범행을 저질렀다.
이들은 왜 이렇게 유색인종을 증오하게 되었을까. 일면식도 없는 그들을 모조리 살해하고 말 기세인 그 깊은 증오는 어디서 나온 걸까. 2000년대 후반부터 형성된 분노와 증오의 정치기류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2008년 11월 4일 미국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버락 오바마가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미국은 마침내 포스트(後) 인종주의 시대에 진입하리라는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인종주의는 종식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기승을 부렸다. ‘흑인이 감히 국가 최정상의 자리를 차지하다니, 이대로 두고 볼 수 없다’며 분개하는 백인들이 많았다.
극우 백인들의 이런 분위기를 간파한 것이 도널드 트럼프였다. 그가 오바마는 미국태생이 아니라는 거짓말을 시작할 때 많은 사람들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백인들의 분노를 자극하면서 트럼프의 정치기반이 되었다. 멕시칸과 무슬림 등 이민자와 유색인종을 싸잡아 공격하고, 코비드를 ‘중국 바이러스’로 부르며 아시안 혐오를 부추기는 증오의 정치로 그는 지지세를 규합했다.
이민자가 계속 몰려오면 미국의 주도권이 유색인종에게 넘어갈지 모른다는 대체론, 인종적 평등 추구로 백인들이 희생당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백인우월주의 진영에서 급속히 퍼져 나갔다. 트럼프는 이들이 인종차별 의식과 유색인종에 대한 증오를 거침없이 당당하게 드러내도록 토양을 만들어주었다. 그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핵심이다.
증오의 말들이 증오에 찬 행동을 부른다. 증오로 비뚤어진 청년들이 악마의 화신이 되고 있다. ‘인종-증오-무차별 총격’의 고리를 끊어내야 이 사회가 정상을 회복한다. 증오와 분노를 부추기는 정치인들을 몰아내는 일이 시급하다. 내년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