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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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론 탈피, 중도노선이 세계 추세

2023-08-24 (목) 정기용 /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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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이 당면한 최대 과제는 보수-진보 사상 대립의 해소라고 단언한다. 모든 국가 현안들이 파열음을 내는 원인이 근본적으로 사상 대결에서 비롯되고 있다. 통일 문제도, 외교 문제도, 심지어 경제 분야까지 보수-진보주의 사고에 대입시켜 충돌이 빚어지고 싸움판을 벌이는 것이 일상화되어 버렸다.
보수-진보 정치이념에 중독돼 있는 이 불치병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치유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미 강대국들로부터 도입한 자유민주주의, 공산주의를 남북이 제각각 신봉하면서 영원히 지워버릴 수 없는 비극을 겪었다. 결국 사상 대립의 대가로 국토가 분단된 채 그 아픔을 지금도 감내하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은 과오를 반성하지 못하고 통일은커녕 점점 더 극한대립으로 불화만 계속 하고 있다.
일제가 패망하고 해방이 되면서 국토 수호, 일치단결을 하지 않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파벌로 분열돼 금기를 범하고 말았다. 우리의 분열은 세계 제 2차 대전 승전국 미국과 소련에게 분단의 빌미를 스스로 제공한 꼴이 된 셈이니 참으로 애통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니었나.

미국, 소련의 남북 분할 점령으로 민주, 공산 두 정부의 대립이 격화되는 와중에 수많은 독립투사, 민주주의 애국자들과 양심세력 지도자들이 희생되고 말았다. 김구, 여운형, 조소앙, 장덕수, 송진우, 조봉암 등등이 희생된 분들이다.
그 이후 우리나라에는 인텔리 계층 지식인들이 엄혹한 사상 대립의 참화에 겁먹고 질려버려 정치, 특히 시국 문제에 관한 한 일절 외면하거나 침묵을 지키는 이상한 풍속까지 유행하게 되었다. 이 같은 지식인들, 양심세력의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 허무주의야말로 보이지 않는 범 국가적 손실임은 재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우리의 분단이 지속될수록 회한이 깊어진다. 도대체 정치사상이 뭐기에 이렇게 아프고 쓰라린 비극과 파탄을 양산하고 있단 말인가. 우리는 너무도 오랜 시간 사상 논리에 휘말려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만 끌어당겨 왔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정치 단어도 1789-1794년 프랑스 혁명 기간에 온건파(일명 애국파) ‘지롱드’와 강경파 ‘자코방’ 간의 정책 대립에서 생겨났고 이들이 좌우로 갈라 앉아 토론하는 바람에 좌익, 우익이란 호칭이 시작된 것이다.

민주주의도 학자 출신의 고위 각료였던 몽테스키외가 막강한 왕권을 순화시키기 위해 제창한 ‘삼권 분립’에서 비롯된 것임은 누구나 다 아는 바다. 공산주의도 마르크스, 레닌이 유물론으로 빈곤층을 선동하여 세계를 장악, 제패해 보려고 내건 선동정치 이론이었다. 정치사상 이론은 시대적이고 가변적이지만 종교철학은 영원한 법이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러시아)을 정점으로 하는 냉전시대는 이미 막을 내렸고 미국과 중국을 대척점으로 하는 신 냉전시대에 접어들어 있다. 공산주의, 민주주의 등 주요 정치제도나 이념들은 기본 틀만 겨우 유지하면서 점차 형해화 되어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우두머리인 미국도 특히 경제 정책에서 사회주의 요소를 대폭 인용하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는 일찍이 시장경제 원리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국가가 되어 있다. 세계는 이미 신유물론 사상을 제 1덕목으로 하는 조류를 형성하며 패권경쟁 시대에 들어섰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자 주장이다.

유독 우리나라만이 한참 철지난 민주주의, 공산주의 또는 진보 보수 따위의 낡은 사상에 중독되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 년 내내, 사사건건 정치싸움으로 국가와 국민 전체를 수렁 속에 빠트려 놓고 있지 않나. 북한 김정은 정권도 영구 집권 망상을 버리고 남북이 통일을 할 수 있는 길로 들어서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주체사상을 명분으로 세습독재, 영구집권 체제를 고집하다니 어디서 호응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엊그제 있었던 한미일 정상회담 합의내용도 평화의 길은 아니다. 한 눈에 중국, 소련 그리고 북한과 승부를 가려보자는 야심이 보이는데 현실적으로 딱 들어맞는 방향인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 민족이 앞으로 추구해야 할 이념은 민족주의가 우선이다. 대결과 투쟁 사상으로 가는 한 우리 민족에겐 영영 통일도, 평화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민족주의를 기회주의나 편향 수정주의로 몰아세우는 것은 무식한 모독이다. 민족주의는 결코 고립, 단절, 배타적 사상이 아니다.
민족주의는 본능적이고 각 민족이 지녀야 할 기본 덕목이다. 민족주의를 근본으로 하는 중립노선(Neutralisms 또는 liberalism)을 추구해야 평화통일, 균형외교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국민 대다수는 이미 보수, 진보, 여야로부터 등을 돌리고 민족적 중도노선을 갈망하고 있다. 모든 통계가 증명하고 있다. 우리 정치인들은 물론, 국민 모두의 의식 전환이 절실한 때다.
(571)326-6609

<정기용 /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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