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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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후반에 숨겨진 보물, 손주

2023-08-11 (금)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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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을 맞아 동부에서 놀러온 손녀의 산수공부를 며칠 도와주었다. 방학 내내 신나게 놀던 아이는 8월 들어서면서 바빠졌다. 작문, 산수 등 방학숙제들에 마침내 생각이 미친 것이다. 새 학기에 5학년이 되는 아이는 산수를 어려워한다. 산수 문제집을 놓고 끙끙 매기에 임시 가정교사가 되어주었다.

아이는 산수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평소 똑 부러지게 영리한 아이가 산수 문제 앞에만 앉으면 정신을 못 차리고 허둥대는 모습이 여간 귀엽지가 않다. 이게 맞나 저게 맞나 확신이 없어 절절매는 모습도, 용케 문제를 풀고 안도하는 모습도 하나같이 귀엽다. 싱싱한 생명력으로 몸 전체가 에너지 덩어리 같이 통통 튀는 유년의 소녀 - 보기만 해도 눈에서 꿀물 떨어지게 예쁘다.

그런데 그 아이의 엄마인 내 딸이 10살 즈음에는 어땠었나. 그때도 아이가 마냥 그렇게 예쁘기만 했었나 생각해보면, 그건 아니다. 존재 자체로 즐거워하기에는 가로 막힌 벽이 높았다. 부모로서의 책임감이다. 개학이 코앞인데 아직도 방학숙제를 끝내지 않았다니, 그 쉬운 문제를 못 푸는 게 말이 되는가 … 한바탕 잔소리를 쏟아 냈을 것이다. 아이가 공부 잘하며 바르고 책임감 있게 자라도록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에 아이의 존재자체를 바라볼 여유는 없었다.


대부분 부모가 그랬을 것이다. 직장일, 가사, 육아 … 하루 24시간이 모자라서 늘 동동거리며 살았다. 그러다 조부모가 되고, 부모의 책임감에서 놓여나니, 비로소 어린 생명의 싱그러운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의 동작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예쁘다. 그러니 아이는 부모가 아니라 조부모 손에 자라는 게 순리가 아닐까, 문득 생각하게 된다.

조부모와 손주, 조손 관계가 근년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조부모가 손주들과 자주 같이 어울리며 뛰어 노는 것이 어떤 유익한 효과를 가져 오는 지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은퇴 후 오래 건강하게 지내는 노년인구가 늘어난 점, 기나긴 노년에 외로움은 만병의 근원이라는 점, 부부 맞벌이로 바쁜 핵가족 아이들에게 조부모의 푸근함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 등이 두루 관심을 끈 결과이다.

관련 연구들을 보면 손주들은 조부모의 건강과 장수에 직접적 기여를 한다. 손자/손녀와 1대 1로 어울리며 몸을 움직이는 놀이를 하는 할아버지/할머니는 그런 기회가 없는 노년층보다 오래 신체적으로 활기차고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이 아니다. 손주들과 자주 어울리는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을 비교한 결과, 전자의 절반은 후자에 비해 5년 후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손주를 돌보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들 다 키우고 한숨 돌리나 했더니 이제는 손주 …” 라며 하소연하는 노년층이 한인사회에도 많다. 노후를 자유롭게 즐기고 싶었는데, 덜컥 손주에게 발목이 잡혔다거나 하루 종일 아이들 쫓아다니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라는 말들을 한다. 하지만 하나같이 덧붙이는 말은 “힘은 들어도 (손주들이) 너무 예쁘다”는 것. 저물어가는 생의 말년에 그런 생생한 즐거움을 어디에서 찾겠는가. 삶이 즐거우면 건강은 좋아질 수밖에 없다.

벨기에는 유럽에서 조부모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50세 이상 인구 중 남성의 62%, 여성의 70%는 손주가 있다. 이들 조부모 중 손주를 돌봐주는 케이스는 절반 이상(53%). 보통 한주에 평균 13시간씩 손주를 돌본다. 벨기에는 노년층의 이런 라이프스타일에 주목, 노년의 건강과 손주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노년층 276명을 대상으로 손주를 돌보는 그룹, 돌보지 않는 그룹, 손주가 없는 그룹으로 나눠 신체활동 정도, 앉아서 지내는 버릇, 몸의 균형, 삶의 질을 꼼꼼히 비교하는 연구이다. 노년층에 손주 돌보기를 장려하는 캠페인 ‘건강한 조부모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에게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존재가 있다. 바로 ‘할머니’이다. 진화란 기본적으로 종의 번식을 목적으로 하는 적응과 변화의 과정인데 구석기 시대부터 인간사회에는 할머니가 있어왔다. 할머니란 생식기능이 끝난 존재. 동물들은 대부분 생식능력을 잃고 나면 곧 죽는다. 그런데 유독 인간사회에는 왜 자손을 생산할 수 없는 존재가 유구한 시간을 통과하며 꿋꿋하게 건재하고 있을까. 인류학자 크리스틴 호크스는 ‘할머니 가설’을 내놓았다. 할머니는 폐경으로 더 이상 자손의 수를 늘릴 수는 없지만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잃지 않도록 안전하게 돌봄으로써 종의 번식에 기여했으리라는 해석이다.

구석기시대의 들판에서 아이들은, 채집하랴 사냥하랴 바쁜 부모보다 할머니와 더불어 편안했을 것이다. 어여쁜 손주들 틈에서 할머니는 자기 자식 키울 때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에 젖었을 것이다. 그 행복했던 기억이 진화의 통로를 따라 이 시대의 조부모에게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허허벌판 같은 노년의 삶에 생기와 즐거움을 주는 존재가 손주들이다. 생애 마지막 챕터에 숨겨진 보석 같은 존재들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손주들도 금방 자라버린다는 사실이다. 곁에 있을 때 자주 함께 놀아야 하겠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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