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연방항소법원 판사 지명자에 대한 상원 법사위원회 청문회를 방청할 기회가 있었다. 아시안 학생들에 대한 하버드대학의 차별적인 입학정책 소송과, 낙태와 관련하여 가족계획소 (Planned Parenthood)에 대한 연방지원금 지급 중단으로 피소된 캔사스주의 변호를 맡았던 지명자에 대한 민주당 의원들의 질문은 날카롭고 비판적이었다.
대부분이 주 검찰총장 출신의 베테랑 법조인들인 그들은 어퍼머티브액션 대입정책의 폐지와 여성의 낙태권 제한을 옹호한 보수 성향의 후보자가 판사로 임명되면 공정하고 비편파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겠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지명자의 대답은 간결하고 분명했다. “변호사는 법정에서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이 아니라 고객의 이익과 주장을 대변하는 직업이다. 따라서 변호사가 맡았던 케이스로 그 변호사의 의견이나 이념의 전부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판사도 자신의 이념이나 의견이 아니라 오직 헌법에 따라 판결을 하는 직업이다. 어느 대통령의 지명을 받고 어느 당의 지지로 인준을 받아 판사가 되었느냐는 판사의 판결과 무관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아무리 객관적이고 공정한 자세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판사들의 이념적인 성향이 법의 해석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개인적인 이념은 배움과 경험을 통해서 형성된 일련의 신념으로 세상을 보는 눈의 렌즈 역할을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이 자신의 이념이나 의견과 다르다고 판사들을 공격하고 사법부의 개편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른 이념과 의견을 거부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판사들의 이념적 성향이 자신들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변호사협회의 평가, FBI의 배경조사, 상원 법사위의 조사와 청문회 등을 거치면서 법관으로서의 자격과 성품의 진실성(Integrity)이 철저히 검증된 사람들이다. 또 그들은 성경 위에 손을 얹고 “헌법에 대한 진실한 믿음과 충성을 견지할 것”을 엄숙히 선서하고 취임한다.
2020년 대통령 선거결과에 불복하여 트럼프 측이 제소한 케이스 중 8건을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들이 맡게 되었다. 그러나 8건 모두 트럼프 측의 소송을 기각함으로써 트럼프의 패배를 확인시켜 주었다. 그 중 두명은 트럼프가 재선되면 유력한 대법관 후보자가 될 것으로 거론되던 판사들이었다. 또 18개주 검찰총장들이 4개 주의 선거결과를 뒤집기 위해 공동으로 대법원에 제출한 케이스도 트럼프가 지명한 3명의 대법관을 비롯하여 보수성향 판사들 전원의 반대로 대법원에서의 심의가 거부되었다. 지난 6월에도 대법원은 앨라바마와 루이지애나 주에서 흑인 투표자가 다수가 되도록 재조정한 선거구가 합헌임을 인정하고 민주당과 진보계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헌법에 대한 진실한 믿음과 충성을 견지할 것”이라는 연방판사들의 취임선서가 충실히 지켜지고 있는 증거들이다.
그러나 어퍼머티브 액션 대입정책과 학자금 론 탕감 케이스의 판결이 나오자 바이든 대통령을 포함한 진보계는 대법원을 트럼프선거 캠페인 슬로건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코트라고 정치적 공격을 퍼부었다. 2022년 대법원이 전국적으로 낙태권을 보장했던 판례를 뒤집고 낙태권에 관한 결정이 주의 권한에 속한다고 판결했을 때는 보수성향의 대법관들이 신변의 안전과 생명의 위협을 받기까지 했다.
최근 비슷한 주장이 한국신문에도 실리었다. 보수성향의 대법관들을 극우라고 공격하면서 최근의 대법원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공격한 오피니언 칼럼을 보았다.
그런 오피니언이 헌법의 법리론적 해석에 기초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의 대법원 판결들도 대법관 각자의 “헌법에 대한 진실한 믿음과 충성” 위에서 내려진 판결이라 믿는다.
또 대법관 임기를 제한하든가 대법관 수를 늘려야 된다는 글도 보았다. 바이던 대통령도 취임 직후 대법원 개혁위원회를 구성하였었다. 진보성향의 헌법학자들로 구성된 개혁위원회는 대법관 임기제한과 대법관 증원에 대한 장단점 만을 기술하고 아무런 개혁안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대법원 개편이 간단한 주제가 아니다는 뜻이다. 사법부의 독립과 권한의 약화는 민주주주의 기본 틀인 균형과 체크의 기능 약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 건국의 조상들이 헌법에 판사의 임기와 보수를 종신 보장한 것은 정치적인 압력이나 경제적 유혹으로 부터 법관들을 보호함으로써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고 “체크와 균형”을 통해 민주주의의 보루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한 제도적 장치이다.
현재 상원 법사위에서 추진되고 있는 대법관 윤리코드 제정도 중단되어야 한다.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의 통과는 고사하고 상원 통과도 불가능한게 뻔한 대법원 상처내기 식 입법 시도는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 또 사법부의 정책제정기구인 미 사법회의(The U.S. Judicial Conference)에서 채택된 연방판사 윤리코드가 이미 존재하고 있을 뿐아니라 입법부에 의한 사법부의 제재는 삼권분립이란 민주주의 기본 틀을 손상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심각한 법관의 비행은 의회의 탄핵을 통해 판결하면 된다.
법원의 판결과 사법부에 대한 정치적 공격은 중단되어야 한다. 법관들에 대한 꼬틀이 잡기식 비난과 공격으로 사법부의 권위와 신뢰에 상처를 내려는 정치적인 의도와 언론들의 편파적인 보도도 중단되어야 한다. 사법부는 민주주의의 보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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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춘 전 미 교육과학원 책임연구원,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