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마음을 세탁해서 내 것으로 만들기. 심리 조종이다. 조종의 본질은 속임수다. 상대 안에 있는 두려움, 불안, 취약한 의존성을 이용, 자기가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낸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외롭고 고독하며 보편적 가치나 애정에 굶주려있다. 상대의 인정을 목마르게 갈구하는 바람에 조종당하면서도 계속 관계 안에 남아있다. 심리-정서적 학대를 받아도 많은 피해자들은 이를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부모-자녀, 부부, 친구, 직장 상급자-부하직원, 연인 등 가까운 사이에서 수시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기분 나쁘다는 표현을 했다가는 사이가 깨어질까봐 피해자는 늘 두렵다. 조종자가 입버릇처럼 “이게 다 널 위해서 하는 소리야.”라고 하니 거절하면 안 될 것 같다. 조종자들은 피해자의 현실 판단 능력을 흐리게 만든다. 자기인식(self-perception)을 의심하게 하고 상황을 분별하는 능력을 스스로 의심하게 조작한다.
심리조종을 당해왔는지, 상대가 자신에게 말하는 방식을 살펴보자. 외도를 저지른 뒤, 배우자에게 “이게 다 당신이 평소 나를 외롭게 하니까 일어난 거야.”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 아이에게 말 잘 들으면 강아지를 키우게 해준다고 약속한 다음, 아이가 사소한 실수를 저질렀을 때 “네가 잘 못하니까 강아지는 없어!”라고 아이가 자책하게 만드는 방식. 직장 상사가 본인의 게으름은 감추고 “요즘 젊은 직원들은 헝그리 정신이 없어서 말이야…”하며 뒤집어씌우는 방식. 여자 친구에게 거칠게 대한 다음, “인상 좀 펴. 너 때문에 나까지 기운이 빠지잖아.”라고 화살을 돌리는 방식.
심리조작을 연구하는 범죄 심리학자들은 피해자들 대부분이 감수성 풍부하고 오감이 지나치게 개발되었으며 감정이입을 잘하는 타입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부정적 비판을 많이 받은 아이들은 자존감이 낮고 거절당하는 두려움이 강하다. 자기가 겪는 옳지 않은 대접은 무의식으로 눌러버린 채, 오히려 상대의 관점을 헤아리고 상대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변명을 자신에게 납득시킨다. 상대의 명백한 기만, 거짓말, 악의 섞인 비난에 세뇌당하면서도 자신의 직관을 믿지 못한다. 피해자의 심리를 읽고 교묘하게 덫을 치는 조종자들의 수법은 비슷하다. 반복적 거짓말, 죄의식 조장, 불안감 조성, 판단능력 박탈하기, 의존하게 만들기 등으로 정서적 위협을 이어간다.
CIA 심리정보 전문가인 리처드 휴어는 심리조종자의 기술을 네 단계로 구분했다. 처음에는 심리적으로 유약한 상대를 골라 자기존재를 과시한다. 둘 사이의 공통점을 강조하며 가까운 사이로 만드는 ‘유혹 단계’이다. 그리고는 ‘나도 실은 불쌍한 사람’이라며 악한 세상의 ‘피해자 행세 단계’로 상대를 속인다. 그 다음엔 모든 일에 교묘히 상대방 탓을 하며 ‘죄의식을 조장하는 단계’, 마지막으로 무슨 방법으로든 복수와 처벌이 뒤따르는데 이때쯤엔 피해자 스스로 자책하며 조종자가 만든 함정에 무기력하게 빠지도록 몰아가는 본격 ‘조종단계’가 된다.
심리학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심리조종에서 빠져나오는 방법보다 누군가의 심리를 조종하고 싶은 방법에 더 큰 관심이 있다는 2017년 사회심리학 실험 결과에 주목한다. 그렇다면 나도 이번엔 가해자 편에서 심리조종자가 되기 위한 전형적 수법을 공개한다. (1)“생각이 있니, 없니!” 분별력 흩트리기 (2)“그럴거면 차라리 말하지 마!” 침묵시키기 (3)“넌 내 말만 잘 들어!” 간섭할 자격 획득하기 (4)“너 때문에 내 인생 망친 거잖아!” 죄책감 씌우기 등인데…… 휴우~~판단은 각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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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