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하면 떠올려지는 게 있다. 영세중립국이란 단어다. 스위스가 중립국으로서의 입지를 확립한 것은 나폴레옹 전쟁(1803~1815) 이후부터니까 200년 이상 중립국으로 지내온 것이다. 그 중립국으로서의 스위스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보도다.
2022년 2월 24일. 푸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그러자 중립국이었던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의사를 밝혔다. 핀란드의 나토가입이 확정된 것은 지난 4월. 이어 스웨덴도 가입 절차를 마침으로써 사실상 나토의 일원이 됐다.
이게 자극제 역할을 한 것인가. 스위스, 또 이웃한 또 다른 영세중립국 오스트리아도 미국과 서유럽 중심의 안보 동맹과 잇달아 손을 잡으면서 그 중립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EU(유럽연합)의 러시아제재에 동참했다. 그런데다가 최근에는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영공방어계획(ESSI)에 합류한 것이다.
관련해 제기되고 있는 주장은 ‘중립은 이제 신화가 됐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중립국 시대는 종말을 맞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 무엇이 이 같은 현상을 불러왔나.
‘러시아의 불법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그 근본 원인이 찾아 진다’-. 포린 어페어스를 비롯한 주요 외교 안보 전문지들의 하나같은 지적으로 핀란드에 이어 스웨덴이 가담해옴으로써 우크라이나 침공사태로 야기된 나토와 러시아의 대치국면은 나토 쪽으로 크게 유리하게 기울면서 이 현상은 확산되고 있다. 힘의 향배에 민감한 것이 국제정치의 흐름이라고 할까.
발트 해가 나토의 내해가 된 것부터가 그렇다. 무르만스크에 기지를 둔 러시아의 북방함대는 거의 무용지물이 됐다. 대서양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나토의 해역을 1,000마일 이상 에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푸틴은 나토의 동진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침공을 단행했다. 그 우크라이나 전쟁이 18개월째 접어든 현재 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되고 있다. 종전에 30개국이었던 나토 가맹국은 핀란드, 스웨덴의 가입으로 32개국으로 늘었다. 우크라이나의 가입도 시간문제다.
북으로, 동으로 나토는 오히려 그 세를 넓히고 있는 형국이다. 이와 함께 러시아는 13세기 징기스칸의 몽골제국 침공이후 최대의 적 앞에 노출됐다는 것이 외교안보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지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제정치의 한 시대를 마감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제 2의 냉전은 그러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한 가지는 이미 분명하다. 미국의 유럽지배가 가속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싱크 탱크 뉴 아메리카의 마이클 린드의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새삼 드러나고 있는 것은 여전한 미국의 파워다. 미국만이 다국적군을 동원해 유사시에 대처할 통합능력과 군사적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 미국에 대한 유럽동맹국들의 의존도는 과거에 비해 더 높아졌다.
그런데다가 나토의 확장(핀란드, 스웨덴의 가입에다가 가까운 장래에 실현될 우크라이나의 가입)으로 미국의 영향력은 더 확산, 강화된다는 전망이다.
‘나토의 외연이 계속 넓어져 그 세력 판도가 러시아에 접근할수록 미국에게 그만큼 유리해진다.’ 일찍이 도널드 럼스펠트 전 국방장관이 제시한 하나의 원칙이다.
과거 소련 블록에 갇혀 있다가 해방된 동구권 국가들이 속속 나토에 가입해오면서 ‘올드 유럽으로 분류되는 독일과 프랑스의 영향력은 감소됐다. 상대적으로 구 동구권 국가들, ‘뉴 유럽’ 의 입김이 강해지면서 미국의 영향력도 증대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유럽의 파워 중심축도 움직이고 있다. 제 2의 냉전, 그 최전선을 담당하고 있는 폴란드가 새로운 중심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 한 예가 제 2의 냉전에 대한 ‘워싱턴 컨센서스’, 다름 아닌 중-러 블록에 대항한 글로벌한 차원의 갈등이라는 바이든의 주장이 전 나토의 내러티브로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은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 그 주장을 지나친 단순 논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폴란드 등 동구권 국가들의 입장은 다르다. 소련, 공산제국의 압제를 직접 경험했다. 러시아, 중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에 대한 체감온도가 다른 것이다.
이 같은 워싱턴 컨센서스의 확산과 함께 또 다른 한 가지 가능성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은 대서양 경제권 태동이다. 중국과의 디커플링은 유럽과 미국, 인도-태평양지역의 자유 민주주의 선진 국가들을 축으로 한 서방 중심의 트레이드블록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다.
이는 2008년 에두아르 발라뒤르 전 프랑스 총리가 내건 구상으로 그는 중국의 도전을 맞아 미국과 유럽이 힘을 합칠 것을 주창했었다.
긴 이야기를 짧게 줄이면 이렇다. 지난 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열린 나토정상회의는 유럽에서 미국의 지배력을, 그러니까 미국이 유럽과의 보다 밀접한 군사와 통상관계를 확립한 회의다. 미국은 그 여세를 몰아 인도-태평양 지역까지 나토의 동진을 가속화 시켜 보다 본격적인 중국견제에 들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를 아시아태평양 파트너국(AP-4) 자격으로 초청, ‘맞춤형 파트너십 프로그램(ITPP)’ 체결을 통해 나토주도 군사훈련에 참여시키는 등 준 나토 회원국 수준으로 협력을 강화한 것이 그 일환으로 군사공동체로서의 가능성도 타진하고 있다는 거다.
중국을 ‘도전세력’으로 규탄한 나토정상회의 성명에 기겁한 베이징. 그 심정이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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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