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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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케어 설명서

2023-07-03 (월) 전한나 / UX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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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라고 이름을 붙여준 고무나무를 3년째 키우고 있다. 이름을 붙여줄 만큼 각별하게 느껴지는 이 초록 친구는 내 손바닥만한 크기일 때 만나서 지금은 내 팔 길이를 훌쩍 넘을 만큼 쑥쑥 자라났다. 건강한 이파리가 아침 햇살을 받아 짙은 초록을 뽐낼 때면, ‘나는 행복한 식물이야!’라고 외치는 것 같아서 아침마다 창가에 있는 제프리와 인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코비드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반려 식물들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초보 식물 집사였던 나는 모든 식물을 건강하게 키우지는 못했다.

몇몇 초록 친구들은 잘 자라는가 싶더니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다 운명을 달리했다. 잎사귀 패턴이 독특해서 아꼈던 ‘칼라데아 오나타’가 시들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속상했는데, 나는 그제서야 유튜브로 칼라데아의 특성에 대해 배우고 어떻게 관리해 주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 둘 식물들을 잃어보고 나서야 각 식물의 특색에 주목하게 되었다. 빛을 좋아하는 친구, 아침 햇살 정도의 간접적인 빛만 받아들일 수 있는 친구, 살짝 건조한 흙이 좋은 친구, 혹은 늘 촉촉한 흙이 필요한 친구, 공기 중 수분이 중요한 친구. 그래서 지금은 새로운 반려 식물을 들이게 될 때면 그 식물의 양육 방법을 반드시 알아보고 그대로 지키려 한다.

때로는 사람의 관계에도 이렇게 관리 설명서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처음부터 어떻게 우리의 관계를 잘 키워나갈 수 있을지 잘 알 수 있을 텐데 싶어서. 무엇이 네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말인지, 네가 지치고 힘들 때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과거의 어떤 일 때문에 네가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인지, 나의 지대한 관심이 너에겐 너무 뜨거운 온도의 것은 아닌지, 어떤 것이 너로 하여금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할 수 있는지, 너의 삶을 내가 어떻게 지지하고 도울 수 있는지. 그런 것들에 대하여 ’관계 지침서’랄까 혹은 ‘관계 양육 설명서’ 같은 곳에 담겨 내게 건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사람의 관계에 있어 그런 편리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고, 시간을 들여 ‘너’를 배워 나가야만 비로소 알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때로 우리의 관계는 시들기도, 노란 잎으로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바라건대, 결국에는 서로의 설명서를 갖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기를. 그래서 우리의 관계가 싱그러운 초록 잎들로 무성한 튼튼한 나무처럼 자라나기를. 그 나무만이 줄 수 있는 기쁨을 함께 맛볼 수 있는 너와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전한나 / UX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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