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맨더링’에 잇단 제동, 소수계 편들어준 대법원
2023-06-30 (금)
이번 달 들어 연방 대법원이 내린 일련의 판결들이 예기치 않은 놀라움을 주고 있다. 바로 ‘흑인 유권자 투표권 침해’ 논란을 불렀던 동남부 주들의 이른바 ‘인종차별적 게리멘더링’에 대해 잇따라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3명의 대법관들이 새로 지명되면서 확연하게 보수 우위 구도로 재편된 연방 대법원이 내린 결론치고는 상당히 의외라는 분석이다.
특정 정당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비합리적으로 확정하는 행위를 뜻하는 게리멘더링은 공화당 성향이 강한 동남부 주들에서 최근 공공연하게 이뤄져왔다. 예를 들어 앨라배마주의 경우 주의회를 공화당이 장악한 뒤 총 7개인 연방하원 선거구 중 한 곳에만 흑인들을 몰아넣는 방식으로 선거구 모양을 기형적으로 뜯어고쳤다. 흑인들의 표심이 선거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도록 이른바 ‘흑인 동네’와 ‘백인 동네’를 구분해 선거구를 제멋대로 만들었고, 그 결과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전체 7곳 중 6곳을 휩쓰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소수계 권익단체가 소송을 제기하자 앨라배마 주정부는 ‘인종 중립 원칙으로 선거구를 재조정했다’는 주장을 폈고, 결국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간 소송에서 대법관들이 5대4로 앨라배마의 선거구 획정은 위법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보수 편향’으로 여겨졌던 연방 대법원도 너무도 명백한 소수계 차별적 관행에 대해서는 무작정 당파적 판결을 내릴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방 대법원의 이같은 입장은 유사한 소송이 제기된 노스캐롤라이나주와 루이지애나주의 선거구 획정 관련 판결에서도 연이어 나타났다. 역시 주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강행했던 이들 두 개 주의 인종차별적 게리멘더링을 무효화시키는 판결이 이어졌다.
이로써 이들 3개주는 흑인 차별 게리멘더링을 파기하는 새로운 선거구 지도를 다시 그려야만 하고, 역시 선거구 조정 관련 소송이 진행중인 조지아와 텍사스주 관련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연방 대법원의 이번 판결들로 소수계 유권자들의 표의 영향력을 축소하거나 이들이 투표소에 나오기 어렵게 하는 방식으로 당파적 이익을 취하려 하는 행위는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설 자리가 없다는 당위적 사실이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