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인도차이나 반도에 터를 잡은 한민족과 베트남 민족은 서로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하다. 베트남 전통에 따르면 최초의 나라는 흥부엉(웅왕)이 기원전 2879년 세운 반랑국으로 돼 있다. 초대 흥부엉을 기리는 흥왕 기일(음력 3월 10일)은 베트남 주요 국경일이다. 단군왕검이 기원전 2333년 고조선을 세우고 그 건국을 개천절로 기념하는 것과 비슷하다.
베트남인들이 세운 나라는 한 무제의 공격을 받아 기원전 111년 망하고 한 9군이 설치되는데 이 또한 기원전 108년 고조선이 한나라에 의해 무너지고 한 4군이 설치된 것과 유사하다. 이후 두 민족은 중국의 침략을 받으면서 그 영향을 받고 불교 등 인도 문명을 포용해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냈다. 근대화에 실패해 한쪽은 프랑스, 다른 쪽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후 둘 다 강대국 세력 다툼과 이념 분쟁으로 남북으로 갈렸던 공통점도 갖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이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월남전 때부터다. 1964년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이 본격화되면서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을 빼려하자 한국은 미군 대신 월남전에 참전하기로 한다. 1965년 존슨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을 초청해 전투 병력 1개 사단을 파견해줄 것을 요청, 한국은 이를 수락한다.
당시 국내 분위기는 ‘월남이 공산화되면 한국도 그렇게 된다’는 우려에다 이를 거부할 경우 주한 미군을 빼갈 것이란 두려움 때문에 월남 파병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국회는 1차 파병안을 만장일치로 승인하고 그 대신 한국은 상당한 군사 및 경제 지원을 받아냈다.
한국이 1973년까지 월남에 파병한 병력은 한 해 평균 5만 명, 누적 34만이 넘는다. 한국군은 참전 중 혁혁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으나 5,000명이 사망하고 1만 명이 부상당했으며 많은 베트남 민간인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그러나 양국은 이런 아픈 역사를 뒤로 하고 1992년 역사적인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으며 그 후 양국 관계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한국은 작년 베트남에 609억 달러를 수출하고 267억 달러를 수입해 342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 베트남은 사상 처음 한국 무역 수지 흑자국 1위로 떠올랐다. 2위는 미국 280억 달러, 3위 홍콩 257억 달러, 4위 인도 99억 달러, 싱가포르 98억 달러 순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 때 한국의 최대 무역 수지 흑자국이던 중국은 올 1, 2월 누적 무역 수지 적자가 50억 달러가 넘어서 이제 한국의 최대 무역 수지 적자국이 됐다. 이는 코로나 봉쇄 해제에 따른 경기 부양 효과가 지지부진하고 수입 원자재 가격은 높았기 때문으로 풀이되는데 이같은 상황은 앞으로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베트남은 무역 흑자 규모만 큰 것이 아니라 교역량도 이미 일본을 제치고 미국, 중국 다음인 3위에 이르고 있을 뿐 아니라 성장 가능성이 높다. 올 인구 1억을 돌파한 베트남은 평균 연령이 33세로 한국보다 12살이 젊고 현재 전체의 40%인 중산층 소비자는 향후 10년간 75%로 늘어날 전망이다. 여성 1인당 평균 출생아 수는 2.06명으로 한국의 0.78의 2배가 넘어 역동적인 인구 동태를 예고하고 있다. 한국의 돈줄 역할을 해온 중국이 이미 인구가 줄면서 고령화로 접어들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렇게 미래 신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베트남에 한국 정부가 공을 들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지난 주 베트남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보 반 트엄 베트남 국가 주석과 정상 회담을 갖고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이행을 위한 행동 계획’을 채택했다. 두 나라는 2030년까지 교역액을 1,500억 달러로 늘리는 것은 물론이고 외교 안보에서도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오랜 세월 중국의 횡포에 시달려 온 역사를 공유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은 양국은 이에 대해 폭넓은 공감대를 갖고 있다.
윤 대통령은 “1992년 수교 이래 양국 교역은 175배가 늘었고, 한국은 베트남 내 최대 투자국이 됐다”며 “지난 30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더 밝고 역동적인 미래 30년을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양국은 IT, 자동차, 철도, 조선 등 111건의 양해 각서를 체결했는데 이는 역대 해외 순방 성과 중 최대 규모다.
자국 우선주의와 미중 간의 패권 경쟁으로 어수선한 지금 서로를 필요로 하는 한국과 베트남의 교류 확대는 무엇보다 시급한 현안이다. 이번 국빈 방문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강화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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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