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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툰베리 졸업하다

2023-06-21 (수)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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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툰베리가 학교를 졸업했다. 툰베리가 누구냐고? 그 이름도 모른다면 좀 곤란한데… 환경문제에 완전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들킨 셈이니 말이다.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는 15세 때 스웨덴 스톡홀름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홀로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School Strike For Climate)를 시작함으로써 글로벌 환경운동의 불을 지핀 청소년 기후활동가다.

하지만 그 시작이 원대했던 것은 아니다. 툰베리는 자폐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내성적 소녀였다. 사회성이 떨어지고 한가지 주제에만 과도하게 집중하는 이 신경정신질환 때문에 그는 기후변화와 환경문제에 빠져들었다. 8세 때 환경다큐멘터리에서 해양쓰레기와 플라스틱 때문에 고통 받는 물고기들의 모습을 본 후부터다. 그의 걱정과 두려움은 갈수록 커져갔고, 마침내 2018년 8월 지구온난화를 방치하는 정치인들에게 항의하기 위해 ‘학교파업’을 시작한 것이다.


3주 동안 땡볕에 혼자 피킷을 들고 시위한 후, 매주 금요일 학교에 가지 않고 시위를 이어갔다. 꼬맹이의 학교파업 이야기는 트위터를 타고 확산되면서 동참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났고, 석달 후에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이란 이름으로 전 세계 청소년들과 환경단체들이 함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9년 3월15일 ‘미래를 위한 글로벌 기후 스트라이크’에 131개국에서 230만명이 참가했다.

툰베리가 더 유명해진 것은 2018년 12월 열린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와 2019년 9월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환경대책에 미온적인 세계 지도자들을 야단친 발언들 때문이다.

“미래가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제가 왜 공부해야 하나요?”

“당신들은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고통받고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습니다. 대량멸종의 시작점에서 여러분이 말하는 것은 오직 돈과 경제성장 이야기들뿐입니다.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나요?”

“여러분, 제가 매일 느끼는 공포를 느껴주세요. 그리고 즉각 행동해주세요. 위기를 당한 것처럼, 집에 불이 난 것처럼 행동해주세요.”

2019년 16세의 툰베리는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고, 타임지 역사상 최연소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으며, BBC 선정 ‘세상을 바꾼 10대’, 포브스지 선정 ‘올해의 여성 100인’, 과학저널 네이처 선정 ‘올해의 인물 10인’에 올랐다. 그는 책(‘The Climate Book’)도 썼고, 다큐멘터리에도 나왔다. 말 그대로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가 된 것이다.


그 툰베리가 이제 20세가 되었고, 마침내 고교를 졸업했다. 지난 9일 그는 트위터에서 “학교파업 251주. 오늘 졸업하는 날이라 더 이상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를 할 수 없게 됐다”면서 5년간 계속해온 금요일 학교파업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형태의 기후변화 집회와 금요일시위를 지속할 것”이라고 선언한 그는 “모든 것을 바꾸려면 모두가 필요하다. 다른 선택이 없고,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대학에 진학할지, 앞으로 어떤 행보를 택할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기후변화, 환경문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나오지만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지 않은, 가장 인기 없는 이야기다. 바로 지난 열흘 동안에 나온 뉴스 헤드라인만 모아보아도 이렇다.

“엘니뇨, 공식적으로 시작…올 겨울 또다시 많은 비 내릴 듯”(6월9일 LA타임스)

“온실가스 효과로 캘리포니아 산불지역 갈수록 방대해진다”(6월14일 LA타임스)

“1.5도 기후변화 최후 방어선 뚫렸다”(6월16일 미주한국일보)

“올해 6월 이미 ‘역대급’ 고온…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로 기록될까”(6월16일 가디언)

“미국 섭씨 50도 육박 이상고온에 끓어오른 지구…인도 최소 96명 사망”(6월18일 AP통신)

“세계 해수온도 급상승···기후재앙 ‘티핑포인트’ 도달했나”(6월18일 더 힐)

“대서양 기록적 온도상승으로 허리케인 두달 일찍 형성”(6월18일 워싱턴포스트)

“산불에서 초강력 온실가스 ‘메탄’ 펑펑…지구를 어찌할꼬”(6월18일 미국지구물리학회 소식지)

“지구기온 최고, 남극빙하 최소…기후위기 4개 지표 최악”(6월19일 CNN)

여기 나열된 위기들(해수온도 상승, 엘니뇨, 온실가스, 폭염, 홍수, 허리케인, 산불, 메탄방출)은 한 가지 문제의 다른 형태들이다. 바로 지구온난화가 가져온 총체적 위기, 서로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발생하는 전 지구적 재앙들이다. 현 시점에서 지구온난화는 멈추거나 돌이킬 수 없다. 작금의 모든 국제적 공조노력은 단지 그 속도를 늦추려는 안간힘일 뿐 산업화 이전으로 회귀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구기온 상승의 임계점은 1.5℃~2℃다. 그 티핑포인트를 넘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바다에 녹아있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북극의 빙하가 모두 녹아 육상생물이 서식할 수 없게 된다. 해수면 상승으로 도시들이 물에 잠기고, 해저에 쌓여있던 메탄이 대기 내에 대량유입, 생태계에 큰 교란이 오고 다양한 생물종이 멸종한다.

멀리 갈 것 없다.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칠드런 오브 맨’ 같은 인류의 절망적 미래를 그린 디스토피아 영화들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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