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테드 카진스키(81)는 연쇄살인범 중에서도 가장 특이했던 인물이다. ‘유나바머’(Unabomber)라 불리며 1980~90년대 미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이 폭탄테러범에 대해서는 바로 최근에도 영화(‘유나바머: 테드K’)와 넷플릭스 다큐시리즈(‘Watch Unabomber-In His Own Words’)가 나왔고, 미시건대학 도서관에는 그의 글과 기록, 편지들을 모아둔 ‘카진스키아나’ 콜렉션이 따로 있을 정도로 대중과 학계의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카진스키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대학과 항공사 등에 16차례 사제폭탄 소포를 보내 3명이 죽고 23명을 다치게 한 희대의 테러리스트다. 하지만 얼마나 머리가 좋았는지 FBI는 그를 잡는데 18년이란 세월과 사상최대인 5,000만 달러를 썼으며 수사관, 프로파일러, 분석가 등 전담인력이 150명이나 됐고 현상금은 100만달러에 달했다. 그리고도 그를 잡은 것은 수사가 아니라 단 하나의 제보 덕분이었다.
테드 카진스키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를 넘어선 ‘기이한 복수극’이었다. 1942년 시카고에서 폴란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때 아이큐 167을 기록한 천재였다. ‘걸어다니는 브레인’으로 불린 그는 16세 때 하버드대 수학과에 입학했고 미시건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후 24세 때 UC버클리 사상 최연소 수학교수가 되었다.
그런데 교수생활 2년만인 67년, 그는 돌연 사직하고 문명사회를 등진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몬태나 외곽의 산속으로 들어가 손바닥만한 나무오두막을 짓고 칩거하면서 수도와 전기 없이 토끼사냥과 농사로 자급자족했고 자기가 만든 양초 아래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카진스키는 산업사회와 기술문명이 인류의 재앙을 불러온다고 분노했고, 이에 대한 복수로 폭탄테러를 감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성냥심지 등 원시적이고 조악한 재료와 방식으로 만든 우편폭탄이어서 이를 열어본 사람들은 경미한 부상을 입었지만 폭탄 제조실력이 날로 정교해지면서 갈수록 부상 정도가 심해졌고 결국에는 3명이 희생되는 결과를 낳았다.
증거 하나 없이 17년간 계속되던 범행은 1995년 카진스키가 뉴욕타임스에 협상을 시도하면서 종말을 맞게 된다. 자신의 사상을 설파한 글을 전문 게재해주면 더 이상의 공격을 멈추겠다는 협상이었다. 신문사 입장에서 보자면 말도 안 되는 일, 살인범이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주류언론을 통해 홍보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리적 논란에 앞서 더 이상 인명피해를 막자는 FBI의 요청에 따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9월19일자 특별섹션에 ‘산업사회와 그 미래’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게재했다.
8페이지 3만5,000단어에 달하는 장문의 유너바머 선언문은 지금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읽기가 쉽지 않다. 현대 산업사회에 대한 장황하고 통렬한 비판, 테크놀러지를 증오하는 자신의 사상을 기술한 내용의 밀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결론은 “산업혁명이 촉발한 기술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인류의 재앙이 될 것이므로 혁명을 통해 산업사회를 전복하고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이 바로 증거가 되었다. 신문에서 선언문을 읽은 카진스키의 동생 데이빗 카진스키는 내용과 문체가 형이 보냈던 편지들과 상당히 비슷한 것을 발견하고 FBI에 제보했고, 수사관들은 몬태나 산속의 오두막을 급습해 그를 체포했다.
1998년 1월 새크라멘토 연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카진스키는 8회의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변호인은 감형을 위해 그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카진스키는 이를 반박하고 모든 혐의에 유죄를 시인했다. 이후 콜로라도주의 연방 최고보안교도소에서 복역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았고, 책을 써서 출판하기도 했다.
카진스키의 범행은 이후 급진적 환경주의자와 테러범들의 모방 대상이 됐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청소년 섬머캠프와 정부건물을 공격해 77명을 죽인 극우 테러범이 그를 거론하며 ‘범죄 선언문’을 올린 것이 한 예다. 그가 21세기 글로벌 위기를 내다본 ‘선지자’라며 열광하는 팬클럽도 생겨났다.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 없던 시대에 이미 기술의 지배와 비인간화, 환경파괴, 불평등심화 같은 현대사회의 문제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카진스키는 영웅이 아니라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한 테러리스트요 살인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 전에 쓴 선언문에서 요즘 쏟아지는 인공지능(AI)에 대한 우려를 예고하고 있다는 점은 놀랍다.
“컴퓨터 과학자들이 모든 일을 인간보다 잘 처리하는 인공지능 기계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되면 고도로 조직적인 기계 시스템이 모든 노동을 담당할 것이고, 인간의 노력은 필요 없게 될 것이다. 그런 경우의 가능성은 두 가지 중 하나다. 인간의 감독 없이 기계가 스스로 모든 결정을 내리거나, 아니면 여전히 인간이 기계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기계가 스스로 모든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결과가 빚어질지 전혀 예측할 길이 없다…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그리고 기계가 점점 더 지능화함에 따라,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결정권을 기계에게 넘겨줄 것이다. 마침내는 인간의 지능으로는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 없는 단계가 도래할 것이다. 그 단계에서는 인간은 기계를 꺼버릴 수조차 없다. 기계에 철저히 종속된 인간이 기계를 끈다는 것은 곧 자살 행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정숙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