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주말 국채 한도를 2년 유예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로써 지난 수주간 세계를 긴장시켰던 미 국가 부도 위험은 일단 사라지고 미 국민을 비롯한 투자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됐다.
이번 안은 민주당보다는 공화당이 원하는 것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소셜시큐리티와 메디케어 등 법으로 이미 정해 놓은 것을 뺀 국내 지출 예산을 2024년 1,120억 달러, 2025년 1천360억 달러 줄였다. 이 타협안은 또 아직 쓰지 않은 280억 달러 규모의 코로나 지원금을 회수하도록 하고 현재 바이든 행정부가 시행 중인 학자금 융자 상환 유예도 중단하도록 하고 있으며 800억 달러에 달하는 연방 국세청 예산 증액 중 14억 달러를 삭감하도록 하고 있다.
모두 공화당의 숙원 과제들이다. 바이든과 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인 것은 끝까지 거부해 국가 부도 사태가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은 야당인 공화당보다 집권당인 민주당에 돌아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한 고비는 넘겼지만 이는 미국이 안고 있는 장기적 재정 문제를 해결할 시한을 2년 벌어준 것에 불과하다.
현재 미국의 부채는 31조 달러에 달한다. 이미 미국 GDP의 140%에 이르고 있는 국채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가속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번에 통과된 타협안은 연방 정부 지출은 향후 10년간 1조 5,000억 달러 줄이기로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30년이 되면 미 국가 부채는 50조 달러를 넘어서게 된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중단없이 증가하는 소셜 시큐리티와 메디케어 등 사회 복지 비용 때문이다. 베이비부머들이 은퇴하면서 수혜자는 늘고 평균 수명은 증가하는데 이를 부양해야할 노동 인구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 소셜 시큐리티 수혜자는 평균 62만 달러를 세금으로 내고 69만 달러를 가져간다.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없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연방 예산의 45%를 차지하는 이 두 프로그램의 개혁 없이 날로 늘어나는 재정 적자와 국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이 분명함에도 민주 공화 양당 누구도 이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바이든은 자기 임기 중 이들 혜택을 깎는 일은 없을 것을 공언하고 있고 다른 면에서는 바이든의 정반대 입장에 서 있는 도널드 트럼프도 이 문제에 관해서만은 맞장구를 치고 있다.
이들이 감히 복지 혜택 축소를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7,800만에 달하는 메디케어 수혜자와 6,600만 소셜 시큐리티 수혜자의 표가 무섭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혜택 축소를 얘기하는 순간 그 인간의 정치 생명은 끝난 것과 다름없다. 한 사람은 혜택을 줄이지 않겠다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줄이겠다고 하면 혜택 수혜자가 누구에게 표를 줄 것인지는 세 살 어린아이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눈을 감고 못 본 척 한다고 달려오는 급행 열차가 멈추지는 않는다. 메디케어 병원비 부분은 2031년, 소셜 시큐리티는 2033년이면 기금이 고갈되며 그렇게 되면 메디케어 혜택은 11%, 소셜 시큐리티는 23% 자동 삭감된다. 현실이 이런데도 메디케어와 소셜 시큐리티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외치는 정치인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은 나중에 자동 삭감당하라는 말과 똑같기 때문이다. 2030년대가 되면 바이든도 트럼프도 미국 정치판에 없을 것이다. ‘내 뒤에는 홍수가 나도 상관없다’는 프랑스 속담이 생각난다.
나라가 수입을 고려하지 않고 흥청망청 쓰면 어떻게 되는가는 지난 10여년 동안 그리스가 분명히 보여줬다. 내세울 산업이라고는 관광밖에 없으면서 무상 의료와 퇴직전 수입의 80%를 주는 연금 혜택등 과도한 복지로 2008년 국가 부도 직전까지 갔던 그리스는 뼈를 깎는 고통 속에 무상 의료 폐기와 과감한 연금 개혁으로 기사회생했다. 얼마전 열린 총선에서 급진 좌파 연합은 옛날의 과도 복지로의 회귀를 약속했으나 한 번 쓴 맛을 본 그리스 국민들은 이들을 버리고 우파 집권당인 신민당을 압도적 표차로 선택했다.
공화 민주 양당이 국채에 관심을 갖는 척 하고 초당적 합의안을 마련한 것은 2011년이었다. 그러나 당시 15조 달러였던 국채는 이제 31조로 늘어났고 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미국과 그리스는 경제 규모나 경쟁력에서 비교가 안되지만 들어온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으면 결국 망한다는 경제 원리는 똑같이 적용된다. 헤밍웨이가 쓴 소설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에 어떻게 망했느냐는 질문에 “서서히, 그리고는 갑자기”라고 답하는 장면이 있다. 더 늦기 전 미국민과 정치인들은 정신 차리기 바란다.
<
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