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이 만개했던 봄날이 자연의 섭리(攝理)에 따라 어김없이 사라졌다. 뒤이어 핀 철쭉, 아카시아꽃도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6월이 되니 초여름의 숲은 하루가 다르게 신록으로 짙어진다. 온통 초록으로 뒤덮인 셰넌도어 국립공원의 산과 계곡의 나무들은 서로 비슷비슷하여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수많은 나무들이 펼치는 녹색의 숲에서 독우드(American Dogwood; 산딸나무)의 새하얀 포엽(苞葉; Small Leaf)이 눈에 금방 환하게 들어온다. 청순하고 아름다워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꽃차례(花序 화서) 전체가 마치 한 송이 꽃처럼 보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꽃이 아니라 잎이 변형된 포엽이다.
집밖에 나가봐도 온 마을이 눈이 내린 듯 독우드 꽃으로 뒤덮여 있는 풍경이 숨이 막히도록 황홀하다. 그늘진 곳에서도 자라지만, 양지에 있는 나무가 더 많은 꽃을 피우는 듯 하다. 봄꽃이 사라진 후 꽃이 흔하지 않은 시기에 피어 있기 때문에 더 돋보인다. 포엽의 색깔은 핑크색 또는 노란빛을 살짝 띄는 흰색이 일반적이다.
독우드 꽃은 암수한몸 양성화이며, 4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하여 6월 까지 가지 끝에 무리지어 핀다. 둥그렇게 만들어진 꽃차례에 4장의 꽃잎처럼 생긴 흰색 포엽이 꽃차례 바로 밑에 열십자(十)모양으로 달려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색이 섞이지 않아 청순하고 깔끔하다는 느낌을 주는 꽃이다. 밤에는 하얀 꽃이 더욱 환하게 비춘다. 열매는 익을수록 녹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하며 안에 큰 씨앗이 있고 식용이 가능하며, 키가 7~10미터 정도 자란다.
십자가 모양의 꽃이 탐스럽고 청아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독우드는 미국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표적인 꽃나무 중 하나이다. 미국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원수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좋은 예로서, 90여년 전 1921년 일본 수도 도쿄시가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 삼천 이십주 벚나무를 선물한 것에 대한 답례로 2012년 미국에서 일본으로 삼천주의 독우드를 보냈다. 이런 사실을 봐도 미국을 대표하는 꽃나무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독우드 꽃은 버지니아 주화(州花; Virginia’s Official State Flower)이자, 독우드 나무는 버지니아의 주목(州木; Virginia's Official State Tree)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인들이 짜깁기한 씁쓸한 속설에 의하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쓰인 나무가 독우드(Dogwood)나무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산딸나무는 지금보다 재질이 단단하고 컸으며, 당시에는 예루살렘 지역에서 가장 큰 나무였다고 허언을 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이후 다시는 십자가를 만들 수 없도록 하느님이 키를 작게 하고 가지도 비꼬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십자가에 못 박힐 때의 모습을 상징하는 십(十)자 꽃잎을 만들었다고 우긴다. 꽃잎의 끝은 예수의 손바닥에 박힌 못처럼 색이 약간 바래고 흰 모양을 나타낸다고 허무맹란한 말도 한다.
붉은 수술은 예수의 머리에 씌워진 가시관을 나타내며, 붉은 열매가 몇 개씩 붙어 있는 모습은 예수의 피를 나타낸다고 꾸며대기도 한다. 성경에도 없는 이야기를 사실인 것처럼 황당무계하게 옮기는 일은 잘못된 신앙인의 자세이다.
예수님의 성십자가를 독우드 나무로 만들었다는 항간의 속설은 잘못된 믿음과 사이비 기독교를 신봉하는 일부 사람들의 삼인성호(三人成虎)같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예수님이 살았던 시절 감람나무(올리브나무)는 있었지만 독우드는 그 지역에 없었던 나무이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Cyprus)나무가 십자가를 만들 때 사용한 나무라는 설이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나무 중에 3대 유명한 나무로는 감람나무(팔레스타인 지역), 무화과나무(에덴동산), 잣나무(노아의 방주)가 있다.
기독교인에게 성십자가는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성물이다. 예수님의 죽음이 전설이나 신화가 아닌 것처럼 예수님의 성십자가 나무는 독우드 나무가 아니다. 십자가를 만든 나무의 종류가 중요하지 않고 사랑, 희생, 봉사의 3가지 중요한 십자가 정신을 배워야 한다.
나무가지마다 눈꽃처럼 피어있는 독우드 꽃말(Flower Language)은 마치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보호해 주듯이 ‘당신을 보호해드리겠다”이다. 집 밖에는 독우드 꽃이 피어 있어서 황홀하고, 집 안 벽에 걸려있는 십자가는 항상 나와 내 가족을 보호해주고 있어서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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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모 / 워싱턴산악인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