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전생’(Past Lives) ★★★★½ (5개 만점)
▶ 한국계 감독의 연출 솜씨가 돋보이고 대사가 심오하고 아름다우며 사실적
노라(왼쪽)와 해성이 유람선을 타고 뉴욕 관광을 하고 있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이 모두 인연 탓이라면 노라와 해성이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것도 모두 인연 탓이라고 하겠다. 전생과 현재의 삶 그리고 후생이 모두 다 이 인연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지혜롭게 얘기한 이 영화는 로맨틱한 사랑의 드라마이지만 이 사랑의 두 주인공들은 정열이 달아오르는 로맨틱한 관계를 피해가고 있다. 후생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인지도 모른다.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극작가 셀린 송이 각본을 쓰고 감독으로 데뷔한 영화로 두 주연 남녀배우 그레타 리와 유태오도 모두 한국계이다. 송 감독의 확신에 찬 연출 솜씨가 돋보이는데 극작가답게 대사가 심오하고 아름다우며 아주 사실적이다.
인연을 크게 강조한 얘기여서 운명의 드라마라고도 하겠는데 사람이 살아가면서 생각하는 현재와 다른 길의 선택 그리고 후회와 함께 그리움을 다루면서 도 흔한 감상적인 멜로드라마 사랑의 얘기를 피한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디딘 매우 우아한 영화다.
영화는 3막 형식으로 구성됐다. 먼저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서울의 초등학교 동급생인 나영(문승아)과 해성(임승민)은 절친한 사이로 첫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러나 나영의 부모가 토론토로 이민을 가면서 둘은 헤어진다. 나영은 이민 가기 전에 아버지로부터 노라라는 영어 이름을 얻는다. 그로부터 12년 후. 뉴욕에서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노라(그레타 리)는 페이스북으로 옛날에 알던 사람들을 찾다가 해성(유태오)을 만나게 된다.
노라와 대학에서 공학을 공부하는 해성은 잦은 화상 대화를 통해 과거를 얘기하고 그 동안 서로의 내면에 잠복해 있던 정을 나누는데 이 컴퓨터를 통한 플라토닉한 사랑의 대면 모습이 따스하고 곱다. 이로 인해 둘은 직접 만나는 것까지 생각하게 되는데 야심이 큰 노라는 자신의 현재의 삶을 소홀히 하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지닌 거리가 먼 곳에 있는 해성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기 위해 해성에게 대화 중단을 요구한다.
이로부터 12년 후. 노라는 작가 촌에서 만난 작가 아서(존 마가로)와 결혼 한지 7년째. 어느 날 해성이 노라에게 휴가차 뉴욕에 온다는 통보를 받는다. 노라는 이를 아서에게 알리고 해성을 만나기로 한 공원으로 간다. 둘이 멀리서 한참을 서로 바라보다가 노라가 해성에게 다가가 포옹하는 장면이 조용하면서도 감정 가득한데 둘이 나누는 첫 대사는 “와우.” 둘이 브루클린을 돌아다니면서 옛 정을 다시 나누면서도 영화는 상투적인 로맨스 영화의 감상성을 배제하고 절제미로 감싸여져 있다.
해성이 뉴욕을 떠나기 전 날 노라와 함께 아서를 만나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 참으로 부드럽고 정겹고 또 현실적인데 라스트 신이 보는 사람의 가슴에 고통을 주도록 운명적이다.
그레타 리와 유태오가 지극히 절제된 연기로 보기 좋은 콤비를 이루고 있는데 특히 돋보이는 연기가 마가로의 그 것. 노라가 해성을 만나는 것에 대해 질투와 고통을 느끼면서도 거의 포기하는 듯한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고요하고 자비롭고 사려 깊게 보여주고 있다. 우수와 비감 그리고 그리움과 운명감이 가득한 아름다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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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