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교인 칼럼] 인사만 잘해도 좋은 그리스도인이다

2023-05-25 (목) 장준식 목사( 프리몬트 세화교회 담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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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로마서를 바울의 교리서로 읽는 것입니다.그러한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저명한 신약 학자 스캇 맥나이트는 로마서를 거꾸로 읽어보라고 제안합니다.이것은 로마서를 1장에서부터 읽는 것이 아니라,로마서의 마지막 장인 16장부터 읽는 방식입니다.로마서 16장을 먼저 읽으면,우리는 로마서에서 ‘교리’를 먼저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만납니다.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라”(롬 16:1).

뵈뵈를 로마교회에 소개하는 문구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로마서 16장의 내용은 온통 ‘사람’에 관한 것입니다.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바울은 ‘문안하라’라는 말을 합니다.지금 바울은 인사 중입니다.서로가 서로에게 인사하는 중입니다.우리는 인사하는 일을 별거 아닌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지만,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사’만큼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바울이 이렇게 긴 공간을 할애하여 인사를 나누는 이유가 있습니다.이것은 로마 교회에 바울이 편지를 써서 보낸 이유이기도 합니다.

로마교회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연합하여 세운 교회입니다.그런데 이 두 부류는 자라온 환경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서로 다른 차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렇다 보니,두 부류는 한 교회에 속해 있으면서도 많은 갈등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갈등이 깊어지면 서로 간에 가장 먼저 끊기는 것이 ‘인사’입니다.인사는 단순히 안부를 묻는 게 아니라,서로가 서로를 자신들의 삶에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서로 인사를 안 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자신들의 삶에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16장에 열거되고 있는 이름들은 모두 이국적인 이름들입니다.그래서 우리들은 어떤 사람이 유대인 그리스도인인지,이방인 그리스도인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그러나 로마교회 구성원들은 바울의 이 편지를 읽으면서 거기에 열거된 이름들이 누구인지,유대인인지 이방인인지 아주 잘 알았습니다.바울은 그렇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이름을 열거하며,서로가 서로에게 인사를 나눌 것을 권면합니다.이것은 바울이 1장에서부터 논의한 내용의 결론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서로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 갈등,그 갈등 때문에 발생한 상처,반목,이러한 것들을 거두어들이고,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용납하라는 것입니다.그렇게 서로 받아들이는 일은 ‘인사’로부터 시작합니다.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라는 사회학 용어가 있습니다.팬데믹 동안 이 말을 사용해서 서로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거리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사회학에서 ‘사회적 거리’는 원래 사람들 사이에 서로를 서로의 삶에 얼마나 깊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데 쓰는 용어입니다.일례로,한국인은 타인종을 자신들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굉장히 큰 거리감을 둡니다.특정 인종은 회사나 마을에서 인사 정도 나누는 것,그들과 식사 정도 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결혼을 통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꺼려합니다.이러한 것을 두고 ‘사회적 거리’라는 말을 씁니다.

팬데믹 동안 아시안 혐오가 기승을 부렸습니다.지금도 아시안들은 미국 사회에서 매우 약자로 살아갑니다.그만큼 미국 사회에서 아시안들은 사회적 거리가 멀다는 뜻입니다.사회적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는 ‘인사’보다는 ‘폭력’을 쓰기 십상입니다.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어떤 사람인지 가리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인사를 반갑게 나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거리가 가깝다는 뜻이고,서로가 서로를 자신들의 삶에 잘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입니다.애석하게도 혐오와 폭력이 늘어난 요즘 세상에서,아시아인으로서,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좀 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손쉬우면서 의미 있는 일은 ‘인사’입니다.만나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 보세요.인사만 잘 해도 좋은 그리스도인입니다.우리의 인사에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와 복음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장준식 목사( 프리몬트 세화교회 담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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