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시 생각하는 ‘러다이트’

2023-05-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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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배가 다니던 강에 증기선이 취항하면 사공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노 저을 일이 없어진다. 오직 힘센 팔뚝이 생계 수단이던 사공들에게 증기선은 재앙이다. 산업혁명 초기에 증기선이 처음 등장하자 뱃사공들이 단체로 배에 올라가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컨테이너가 처음 나왔을 때도 사정은 비슷했다. 규격화된 컨테이너의 등장은 특히 해상 화물 운송에 지각변동을 불러왔다. 부두에서 짐을 싣고 내리던 하역 일군들의 일거리가 뚝 떨어졌다. 이들의 위세도 전 같지 않았다. 컨테이너 선이 정박하는 항구 마다 저항과 태업이 이어졌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버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차량 공유라는 신 개념 플랫폼은 기존 택시에는 치명적이었다. 한동안 택시 기사들의 폭력 시위와 동맹파업이 유럽을 얼룩지게 했다. 채 10년도 지나지 않은 이야기다. ‘자가용 영업’이 제도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우버는 이용자에게는 편리하지만 택시 업계의 저항이 드센 곳에는 발을 딛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신기술의 등장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예가 많다. 편리하지만 이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집단이 생길 수 있다. ‘지금 이대 로가 좋은’ 기성 세력은 다양한 방법으로 변화에 저항했다. 유럽에 금속활자가 등장한 것은 15세기의 일이지만 그 후 근 3세기 동안 인쇄를 금지한 국가도 있었다. 기득권층의 이익에 반하는 사상의 전파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유사한 이유로 철도 보급을 허용하지 않는 왕조도 있었다.

산업혁명 초기인 19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은 신기술의 개발로 벌어진 사회적 갈등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러다이트는 새로 발명된 방직기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인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했던 과격 집단행동을 가리킨다.

러다이트란 말은 이 운동의 지도자 이름에서 왔다고 하나, 실체 없는 허구의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산업혁명 초기에 일어난 무력을 동반한 사회운동 러다이트는 신 기술의 등장으로 소외된 세력이 일으킨 반 문명적 파괴 행위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측면에서만 러다이트를 평가할 일이 아니라는 시각이 엄존한다. 시비의 대상이 새로운 테크놀로지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산업이 발전해 갈수록 노동 착취의 방법은 교묘해지고, 정도는 심해졌으며 러다이트는 여기에 대한 저항 운동이었다는 평가가 곧 그것이다. 기술 발전에 따라 더 뚜렷하게 드러나고, 증폭되던 불평등에 대한 사회 경제적 약자들의 문제 제기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러다이트를 계기로 노동자들의 단체 교섭권과 행동권은 강화됐다. 문서로 된 노사협약도 처음 등장했다. 갈수록 강고해지던 기성 정치 세력과 부유한 자본가, 산업체 주인들의 결탁에 맞설 수 있는 근로대중의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러다이트는 기계 파괴 운동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만을 받지 않는다.

최근 러다이트라는 말이 쓰이는 예가 적지 않다. 200여년 전 방직기처럼 새로 등장하는 신 기술이 한 두 가지가 아닌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 양반(혹은 나는) 정말 러다이트야. 벤모(혹은 이모지)를 쓸 줄 모르고, 쓸 생각도 안한다니까”라는 말을 듣게 된다고 하자. 이럴 때 러다이트는 ‘시대변화에 따르지 못하는 구세대’, 더 좀 직설적으로는 ‘새로운 것을 못 받아들이는 케케묵은 꼰대’라는 정도의 뜻이다.

러다이트, 그러나 곧 이런 퇴행적인 의미만 있을까? 30여년 전에 발표된 신 러다이트 선언(Neo Luddite Manifesto)이 있다. 인간 정신을 황폐화시킬 수 있는 기술혁신에 대한 우려가 여기 담겨 있다. 지금은 인공지능 시대의 초입, AI 개발의 선두주자들이 잠시 숨 고르기를 선언한 것이 얼마 전 일이다. 왜일까?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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