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통령 잔혹사

2025-05-05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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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이란 말과 함께 한 때 한국에서 유행하던 말이 ‘3D 업종’이다. Difficult(어렵고), Dirty(더럽고), Dangerous(위험한) 업종을 총칭해 ‘3D’로 불렸던 것.

흔히 제조업, 광업, 건축업 등에서 ‘주로 몸으로 때우는 일들’로 최근에는 거기에다가 원거리(Distant)의 특성을 지닌 원양업까지 포함하여 4D 업종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마디로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수행하기 매우 힘들며, 나아가 건강과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위험한 직업들로 다른 말로는 ‘극한직업’으로도 불린다.


굉장히 위험한 직업이 있다. 상황에 따라 ‘극한직업’보다 더 위험하다. 이 직업 종사자가 그렇다. ‘거의 다’라고 할 정도로 그 끝이 아주 고약하다. 그 직업은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그리고 최근의 윤석열.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이다.

이 13명 대통령 중 말년을 편안히 지낸 대통령은 찾기가 힘들다. 이승만은 국민에 의해 끌어내려지고 쫓겨나 해외망명지에서 외로이 생을 마감했다. 박정희는 암살됐다. 전두환, 노태우 는 청와대를 떠난 후 감옥생활을 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형무소 생활은 모면했다. 그러나 아들들이 구속됐다. 노무현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잔혹사는 이로 그치지 않는다. 박근혜는 탄핵되는 것도 모자라 뇌물혐의 유죄확정과 함께 철창행 신세가 됐다. 이명박은 무사히 평온한 노후를 맞이하는가 싶더니 촛불정권의 적폐청산에 내몰려 투옥됐다.

관심은 이제 남은 두 전직 대통령 신변에 쏠리고 있다. 비슷한 타이밍에 둘 다 기소되어서다. 문재인은 뇌물죄로, 윤석열은 내란죄로 각각 기소돼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 국민의 존경을 받는다. 그런 가운데 국가원로로서 강연을 다닌다.’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다.


이 정도면 대통령들의 개인적 자질 못지않게 대한민국 정치의 구조적 결함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제는 미국 밖을 벗어나면 독재와 키스한다‘는 말이 있다. 정치 후진국에서 대통령제는 독재가 되기 십상이라는 말이다.

이 지적대로 대통령이 되자 독재자가 된 업보로 대한민국 대통령의 잔혹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인가. 초대에서 5공화국까지는 ‘아마도’란 답이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다. 그 때까지 대한민국은 성숙된 민주주의 체제로 볼 수는 없었으니까.

이후 정치는 대체로 안정적이었고 민주주의도 제대로 작동돼왔다. 그런데 잔혹사는 계속 이어져왔다. 왜.

전직 대통령들이 단죄 받는 1차적 이유는 재임시절 저지른 범법행위와 국정실패에서 찾아진다. 그러나 ‘촛불’ 이후 거기에는 알파가 작용해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좋게 말해 여론의 압력, 다른 말로 하면 과도한 광장 정치가 다른 한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극단적 진영 논리로 정치판을 사생결단의 대결로 몰아가는 한풀이 정치가 전임 대통령들의 수난 속도를 가중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대통령 잔혹사가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또 다른 차원으로 진화될 것 같다. 대법원 합의부가 사실상 유죄를 확정지었다. 그런 범죄자가 ‘중단 없는 대권행보’를 외치고 있어 하는 말이다.

대한민국의 정치 시계는 도대체 몇 시를 가리키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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