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하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 출마가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출마 여부를 놓고 분명한 의중을 드러내지 않던 한 대행은 윤석열 탄핵으로 치러지는 6월3일 대선에 출사표를 던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하루 이틀 내에 출마를 공식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한 대행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국민의 힘 경선 후보들이 ‘단일화’를 언급하고, 보수진영에서 추대위원회가 결성되는 등 이미 대선 후보가 된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돼 왔다. 한덕수 자신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와 외신 인터뷰 등에서 출마 여부에 대해 “고민 중이다”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등의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면서도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방위비 재협상’ 가능성을 시사하고, 자신의 임무는 헌법과 관련 법률에서 나왔으며 권한대행과 선출된 대통령 간에 수행할 수 있는 업무에 차이가 없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 발언은 사실상 차기 대권에 뜻이 있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됐다.
한덕수는 이 인터뷰에서 ‘미국의 은덕’을 언급하며 시종일관 미국의 의도에 맞추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세계적 경제학자인 장하준 영국 런던대학교 교수는 “미국에 원조 밀가루 받아먹던 시절의 멘탈리티에 사로잡혀 있다”고 따끔하게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 내내 국무총리를 지낸 한덕수는 윤석열의 실정과 내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 그리고 그는 불과 한 달여 남은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할 소임을 지고 있는 행정부 책임자이다. 그는 조기대선이 확정되자 “차기 대선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랬던 그가 말을 바꿔 대선에 직접 뛰어들겠다고 선언한다면 이를 납득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한덕수가 살아온 이력을 잘 알고 있는 인사들은 그의 이런 입장 바꾸기가 전혀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총리 이후 14년 만에 윤석열 정부 첫 총리로 발탁되는 등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며 출세를 해온 한덕수에게는 줄곧 ‘노회한 기회주의자’라는 평판이 따라 붙었다.
그의 이런 면모를 가장 여실히 보여준 일화는 이른바 ‘고향 바꾸기’이다. 그가 진보정부에서는 고향이 전북임을 내세웠다가 보수정권에서는 이를 감추고 자신을 서울출신으로 포장했던 사실은 그의 기회주의적 태도를 잘 드러내준 일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자신을 국무총리로 기용해준 노무현의 장례식에 얼굴을 보이지 않은 것도 같은 선상에서 비판을 받았다.
최근 한 유명 DJ가 라디오 방송 도중 “현대인의 난치병이 된 질병 중 하나가 ‘난가병’”이라고 발언을 해 화제가 됐다. ‘난가병’은 ‘자기객관화’가 전혀 안 돼 있는 인사들의 한심한 의식을 지적하는 말로 “다음 대통령은 나인가”라고 착각하는 정치인들을 꼬집고 있다.
대선출마를 저울질하는 한덕수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나온다. ‘난가병’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는 내란관련 혐의를 받고 있고, 위헌으로 판명난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 지명과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로도 고발돼 있다. 정권이 교체된다면 차기정부에서 수사를 피하기 어렵다.
어차피 당선이 힘들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대선후보가 됨으로써 자신을 향한 수사의 칼날을 어떻게든 정치적으로 해결해보자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기회주의 끝판 왕’ 한덕수가 어떤 선택을 할지, 그리고 그 선택의 결말은 어떻게 될지 곧 드러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