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불치의 병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여전히’ 밝은 사람이 있다.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갑자기 손이나 다리가 떨리고, 느닷없이 몸이 뒤틀려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파킨슨 병 환자인 배우 마이클 J. 팍스(61)이다.
30년 넘게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한결같은 삶의 자세로 존경받는 그를 조명한 영화 ‘스틸(Still: A Michael J. Fox Movie)’이 지난 주 공개되었다. 그의 삶과 커리어, 병, 가족을 두루 담아낸 그의 인생 다큐멘터리이다. 제목 ‘스틸(still)’은 ‘가만히’와 ‘여전히’를 모두 의미하는 듯하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그의 몸, 그럼에도 가만히 있지 않고 여전히 활동적인 그,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그의 모습 등.
80년대 중반 팍스는 할리웃 최고의 인기배우였다. ‘패밀리 타이스’ ‘백 투 더 퓨처’ 등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20대의 그는 산더미 같은 돈과 아찔한 인기로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이어 1988년 동료배우 트레이시 폴란(62)과 결혼하고, 이듬해 첫 아들이 태어나고 … 그는 더 이상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삶이 온통 장밋빛일 때 불운은 찾아들었다. 영화 촬영 중 갑자기 새끼손가락이 떨리는 것이었다. ‘전날 과음 탓인가’ 하고 넘겼는데, 수상한 증상은 계속 되었다. 1991년, 29살에 그는 파킨슨 병 진단을 받았다.
신경퇴행성 질환인 이 병은 완치가 불가능하다. 병의 진행을 확실하게 멈추거나 늦추는 약물이나 치료법이 아직 없다. 충격을 감당할 길 없던 그는 술에 빠져 살았다. 연기 중 떨리는 손발을 감추려니 술 핑계가 필요하기도 했다.
방황은 3년 간 이어졌다. 그리고는 그는 중심을 잡았다. 병을 받아들이고, 파킨슨 병 환자로서삶을 살기 시작했다. 배우로 성우로 열심히 일하는 한편 파킨슨 치료법 개발을 위해 재단을 설립했다. 2000년 설립된 마이클 J. 팍스 재단은 지금까지 15억 달러의 기금을 모으며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병이 많이 진행된 지금 그는 성할 날이 없다. 툭하면 넘어지고 다친다. 최근 척추종양 수술을 받은 후로는 걸음걸이가 뒤엉켜서 더 자주 넘어지고 여기저기 뼈가 부러진다. 매일 매일이 고통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 절망적 상황에서도 그가 오뚝이처럼 꿋꿋한 비결은 가족이다. 몸이 성치 않은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남편으로 아빠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가족이 있어 그는 견딘다. 만나고 헤어지기를 밥 먹듯 하는 할리웃에서 부부는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이다. 병마가 몰고 왔을 갖가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부부는 4남매를 낳아 키우며 35년을 함께 살고 있다. 그런 아내, 가족이 없었다면, 팍스가 지금처럼 의연할 수 있을까. 지금처럼 못 말리는 낙관론자로 살 수 있었을까. “가족은 중요한 게 아니라 전부”라고 그는 말한다.
5월, 가정의 달이면 생각나는 가족이 있다. 남가주 어바인에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사업을 하는 데이빗 권씨 가족이다. 몇 년 전 그 가족 이야기를 취재한 적이 있다. 생각난 김에 그와 통화를 해보니 가족들은 여전한 것 같았다. 쌍둥이 남매 중 딸은 여전히 환한 미소로 아빠를 행복하게 하고, 당시 중학생이던 아들은 이제 UCLA 3학년생이 되었다. 집 떠나 대학 근처에 살고 있지만 자주 집에 와서 시시콜콜 온갖 주변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것이 아빠의 단짝 친구로서 여전하다.
그에게 가족은 특별하다.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그는 잘 안다. 그에게 있어서 그런 특별한 가족은 첫째, 부모님이었다. 우연히도 그는 팍스와 연배도 불운도 비슷하다. 공학도로 박사학위 과정 중이던 1989년, 그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전도유망하고 패기만만하던 29살의 청년은 한순간에 사지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캄캄한 절망에 갇힌 그는 죽을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어머니와 아버지는 죽을힘을 다해 살려냈다.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 덕분에 그는 재활훈련을 받고 박사학위까지 마쳤다.
다음, 그를 지금의 그로 만들어준 소중한 가족은 아내였다. 장애인 지원단체에서 봉사하다가 그를 만난 아내는 중증장애인인 그의 청혼을 주저 없이 받아들였다. 1993년 학위 마친 후 바로 결혼하고 미국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2002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가족을 맞았다. 아들딸 쌍둥이였다. 아빠가 되니 가족 경험은 또 달랐다.
아들이 그에게 키우는 재미와 흐뭇함을 준다면, 딸은 깊은 은총을 경험하게 한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뜻의 하은이는 선천성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뇌에 생긴 원인모를 이상으로 나이가 몇 살이 되든 아기침대에 누워서 방실방실 웃던 해맑은 그 모습 그대로이다. 원인과 치료법을 찾으려고 수없이 의사들을 찾아다니고 수없이 울고 기도했지만 허사였다. 아이의 순진무구한 웃음에서 그는 이제 행복과 은총을 느끼며 감사한다.
인간, 그 불완전한 존재들이 모여서 이루는 것이 가정이다. 가족은 서로 부족한 걸 채워주고 허물을 덮어주고 아픔을 감싸주며 함께 나아가는 생의 동반자들. 감출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다. “가정은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곳, 가장 안전한 울타리”라고 권 박사는 말한다. 사랑과 신뢰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족이 있어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다. 가족이 힘이다.
<
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