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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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 우리 삶의 방식

2023-05-12 (금) 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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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데 환대(歡待, hospitality)만큼 따뜻하고 소중한 것이 있을까? 환대를 받으면 마음에 고마움이 든다. 환대의 반대는 홀대, 박대, 냉대, 천대, 외대, 푸대접 등등일 것이다. 이런 대접을 받으면 마음에 서글픔이 든다. 환대는 모든 만남의 시작이어야한다.

국가 정상들의 만남도 환대로 시작한다. 지난 4월 윤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하여 대단한 환대를 받았다. 최고의 만찬, 의회 연설, 명문대 연설 등등 미국 정부는 최고의 환대를 하였다. 물론 국제사회에서의 환대는 모두 저의가 담긴 환대이니, 환대 이면에는 분명 서로의 국익을 놓고 치열한 셈법이 오갔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겉으로 환대를 받은 것 이외에 국익차원에서 실질적으로 얻은 것은 별로 없는 듯해서 사뭇 씁쓸함이 있다.

비록 국가 간의 환대는 타산적 환대일 수밖에 없을 지라도, 사람 사이의 환대는 천진한 환대이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 가족, 이웃, 자연이 베푼 환대의 산물이다. 새 생명이 태어나면 엄마는 젖을 물리고 아버지는 안락한 요람을 준비한다. 환대와 축하 가운데 태어난다. 비약일지 모르지만 우주의 시작은 절대자(하느님)의 사랑, 두루뭉술하게 표현하자면 하느님의 환대에서 비롯되었다. 인간과 삼라만상을 위한 절대자의 자비로운 사랑의 마음과 자연의 섭리를 통한 넉넉한 대접, 곧 환대가 우주의 시작이다.

기독교 경전인 성경은 면면이 환대의 삶을 말씀한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문 앞을 지나던 지친 나그네를 환대한다. 율법의 모음집이라 할 신명기 말씀의 핵심도 ‘고아, 떠돌이, 홀로 사는 여인들, 외국인 노동자, 레위인’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라는 ‘환대의 삶’으로의 요청이다. 예수께서는 세상에서 보잘 것 없는 약자일지라도, 반갑게 맞이하고 존중하고 대접하는 환대의 삶이 참 사람의 길이요, 우리를 하늘에 이르게 하는 사랑과 진리의 길임을 말씀한다.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25:40)

환대는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의 하나이거나 에티켓이 아니다. 환대는 나와 너를 잇고, 땅과 하늘을 잇는 참 사랑과 거룩한 진리에 이르는 통로다.

이 시대, 환대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나 종교인들의 개인적 관심을 넘어 세상의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되어야 한다. 거리에서 수시로 마주치는 홈리스를 나는 어떻게 환대해야 하는가?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들어오려는 많은 난민들을 미국 정부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유럽으로 몰려오는 난민들 그리고 앞으로 발생할 기후난민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환대해야 하는가? 짐짓 모른 체해야 하는가? 푸대접해야 하는가?

타자(the Other)윤리학을 제시한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나의 삶의 테두리 밖에 있는 타자의 호소에 응답하여 타자를 나의 삶의 공간에 맞아들이는 것’을 환대라 말한다. 그는 환대를 나와 타자, 있음과 없음, 안과 밖, 유한과 무한의 만남으로 본다. 타자 없는 삶, 곧 나만의 삶의 안락함과 공간을 고수하려는 ‘자기중심’의 삶에서는 환대가 나올 수 없다. 환대는 귀찮음과 낯섦의 수용, 기꺼운 나눔과 이웃됨, 자기개방과 자기축소 의지에서 나온다. 나 역시 이 세상의 ‘나그네’라는 본원을 아는 마음이 있어야한다.

환대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환대가 우리네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 환대의 삶이 마음 마음에 들어서야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우리 모두 예전에는 환대의 대지에서 자라난 우주의 나그네였다고… 우리 모두는 애초부터 환대 받은 자로 태어났으며, 환대하며 살아갈 자로 태어났다고….

<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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